아침달과 숨어있는책방을 갔던 며칠 전 일이다. 평일 오후 3시 좀 넘은 시간이라 자그마한 책방은 주인(이겠지)과 나 밖에 없어 (내게만) 긴장감이 도는 한편, 겨울이 다가오는 시기다 보니 벽만한 창문 또는 창문같은 유리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벌써 쨍한 느낌이 덜해 한편으로 나른했다. 그리고 그런 장면보다 더 깊은 인상을 준 것은 한 음 한 음을 아껴 치는 듯한 음악이었다.


돌이켜 보면 서점에서 배경음악을 의식한 적이 없다. 대형서점은 물론 어렸을 적 가던 동네 서점에서 노래를 틀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뿌리서점 같은 창고형 헌책방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창고형'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코스트코나 이마트트레이더스 같은 할인마트를 묘사하며 사용할 때와, 내가 헌책방을 묘사할 때 전혀 다르다. 기억나는 김에 덧붙이면 몇 달 전에 갔을 때 뿌리서점은 더 이상 '창고형' 헌책방이라고 부르기 힘들어졌다. 여주인분이 다른 손님과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주인분 건강이 안 좋아져 여주인께서 주로 운영하시게 되면서 체계를 깔끔하게 정리하신 모양이다. 그 후로는 간 적 없다.)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도 찾을 수 없는 음악이었다. 만약 교보문고에서 틀었던 BGM이 그만큼 인상깊었더라도, 아니 만약 다른 손님이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그 서점에서조차 그러지 않았겠지만, 책을 계산하고 주인에게 노래를 물었다. 주인은 뭐라 대답했고 나는 딱히 아는 이름도 아니어서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렇다는 내색도 하지 않았는데, 주인은 나를 창가에 있는 스피커와 아이패드로 데려갔다. 나는 아이패드 스크린에 뜬 앨범 사진을 찍었다.


앨범은 Aaron Martin, Part Timer의 Seed Collection 이었다. 일 하며 듣기 좋은 음악을 하나 더 알게 되었으나, '이게 그 때 나오던 그 음악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것이 노래의 생명력(아니면 반복청취 내구력이라고 해야 할까) 때문인지, 그 때 그 장소와 가장 어울리는 음악이어서였는지 (아니면 그 노래가 가장 잘 어울리는 시간과 장소가 그 때 그 곳이어서였는지), 아니면 그저 지금 내 심리가 그때와 달라서인지.


그리고 물어보지도 못한 음악에 관해서. 그 날 이어서 간 숨어있는책방에서는 아예 1분에 한 음 씩 치는 듯한 전위적 음악을 틀고 있었다. 피아노도 오케스트라도 나오니 협주곡이었을지, 아니면 애초에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곡이 별개였을지 모르지만 이번에도 역시 시간과 장소 효과인지 또 다른 방식으로 인상 깊었고, 또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손님도 있었고 계산대도 마치 헌책을 쌓아 만든 패닉룸처럼 가볍게 말 건네기 어려운 구조였으며, 결정적으로 그 음악을 들은 때와 계산대로 책을 들고 간 때 사이에 시간이 꽤 흘렀기에 음악을 묻지 못했다.


그리하여 만들어 본 가설 : 독립서점을 오래 운영하다 보면 대중성과 거리가 먼 음악에 점점 더 끌리게 된다. (물론 그것이 혼자 가게를 지키며 갖은 라디오 방송 및 대중적 가요/팝/클래식을 섭렵한 끝에 신선함을 찾아가게 된 궁여지책인지, 독립서점 운영에 필요한 특징과 음악 취향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어서인지는 알 수 없다.) 사실은 그 날 스 시간에 흘러나온 음악이 수천 곡으로 만든 플레이리스트 중 그저 우연히 그 노래였을 가능성이 더 크지만,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를 읽다가 '헬스장에서 재생되는 <인터스텔라> OST, 한적한 바닷가 커피점에서 듣는 데스메탈, 그리고 헌책방에 흐르는 EDM'이라는 구절을 읽고 생각 난 김에 망상을 전개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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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통신망 화재

기타 2018. 11. 25. 23:07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로 우리 집의 실질적 기준으로는 토요일 12시-일요일 21시 동안 KT통신망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 완전 불가.

지나치는 가게마다 'KT 통신 장애로 카드 결제 / 포인트 할인 및 적립 불가, 현금 또는 계좌이체만 가능'이라는 손글씨가 붙어있는 광경은 나름대로 인상 깊은 장관이었다.


잃은/못한/불편한 것

- 아이들 예방접종 실패 : 토요일 12시에 소아과 방문했으나, 전산 기록에 접근 불가하여 무료 접종 할 수 없음. 

- '고가의' 케익 살 때 파리바게트 KT 포인트 할인 / 해피포인트 적립 불가 : 토요일 당일이 아내 생일이라, '전산 복구되면 처리'로 대응 불가.

- 점심 카드결제 실적 인정 불가 : 피해 지역은 용산구, 서대문구, 마포구 대부분 + 종로, 은평구, 종로구, 고양시 일부라고 하던데, 여의도 식당도 카드 결제 불가하다고 하여 현금 결제.

- 일요일 22시 화상영어수업 : 토익 시험 보러 가기 전까지 통신망 복구 안 되는 것 보고 수업 연기 연락. 사실 21시에 귀가하니 인터넷이 드디어 복구되었지만, 재조정은 하지 않음.


얻은 것

- 강제 낮잠 : 인터넷도 안 돼, IPTV도 당연히 안 돼, 지상파용 안테나 선은 어디 뒀는지 안 보여. 그럼 역시 독서지 하고 책을 꺼내들었으나, 책을 든 채 소파에 누우면 결과는 뻔함. 10시에 일어난 주제에 15시부터 20시까지 낮잠. 덕분에 피로를 풀었다고 애써 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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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에이스 하이>가 보여 준 미친 감각을 계승한 작품은 <익명의 독서중독자>다. <빅토리아처럼 감아차라>는 개그만화로서 만족스럽지만, 현학과 개그를 뒤섞었던 두 편과 비교하면 현학이 빠져 있어 계보에서 벗어난 이질적 작품이다.


<에이스 하이>가 그랬듯 <익명> 역시 종결될 때까지 존재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한 번에 몰아보게 되었다. 책을 소재로 했다는 데서 이미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웹툰이었고, 또 만족스러웠다. 후반의 노선 급변은 아마 연재처가 웹툰 수요 대세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고 조기 중단을 요구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글쎄다, 재고부담과 지면 한정, 현금회수가 중요 이슈일 오프라인 인쇄물이 아니라 온라인 포탈이, 인기에 따라 냉정하고 잔혹하게 연재작을 쳐내는 오프라인 만화잡지를 흉내내야 하는 것인가.


(물론 무한정 연재작을 늘리는 것은 개별 웹툰 주목도 하락에 더해 부차적으로는 서버, 트래픽 관리 문제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무작정 롱/팻테일이 아니라 다수 독자를 끌 유명 인기작 + 소수 열광층을 장기로 잡아둘 컬트작 조합으로 큐레이션하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두 작가가 차기작에 착수하려고 의도대로 마무리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다른 문제가 된다.)


매번 다르면서도 (내가 들어도) 합당한 이유로 쫓겨나는 노마드, 필요할 때마다 사대느라 제각각 다른 사자네 책장에 감동하는 회원들의 모습, 까치출판사 표지 디스 등 공감해서 폭소한 포인트도 많이 있다. 또 D. H. 로렌스의 셰익스피어 시 한 구절, 여기저기서 언급된 여러 책 같이 자극을 새로 받을 만한 부분도 있었다. 


물론 등장한 책은 결국 작가가 읽었거나 읽고 있거나 읽으면 좋다고 들었을 책일 뿐이다. '명문대 추천도서'에 든 책은 다 명작이고 고전으로 분류될 자격과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부모님께서 통 크게 사주신 그 추천도서 수십 권 중 지금까지도 읽지 않은 책이 절반을 넘는다. 가벼운 책이라면 몰라도 (그 중 대부분일) 무거운 책을 자발적으로 읽으려면 둘 중 하나는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병에 걸려 장기 입원을 하느라 가벼운 책을 모두 읽어버렸거나, 살면서 어떤 계기로 해당 도서의 주제에 관심이 생기거나. 다행히 장기 입원을 하지 않은 나는 콜린 윌슨의 <Outsider>는 영국 인터넷 고서점에서 원서를 사서 읽었지만, 부모님께서 20년 전에 사 주신 케네스 클라크의 <藝術과 文明>은 아직도 펼쳐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 같이 받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몇 년 전부터 읽고 싶어졌지만, 그 동안 활자가 깨끗한 새 번역판이 나와 버린 바람에 가지고 있는 책을 읽느냐, 아니면 과감히 손절하고 새 책을 사느냐를 가지고 몇 년 동안 고민만 하고 있다.


한편, 그나마 돈도 받으니 번역가가 아니라고는 못 할 처지에서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 하나 있다. (사실 이 부분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다.) "'저자 소개'보다 '역자 소개'가 긴 책은 재고의 여지 없이 무시한다"는 '팁'이다. 출판사와 역자의 태도가 그래서야 양서가 나올 리 없다는 이유도 붙여서. 언뜻 들어선 그럴 듯하다. 어쨌든 원서는 원저자가 쓴 것이고, 번역가는 원문을 번역한 것일 뿐이니 번역가가 원저자보다 앞에 나와서는 (내가 해석하기에는) 창조자인 원저자를 무시하고 단순 기술자인 번역가를 그 앞에 두는 건방진 행위라는 얘기니까. 그래서는 번역 과정에서 원문을 무시한 월권이 나오고, 결국 오역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논증 없는 감정적 선동과 선언을 지나치고 생각해 보자. 


우선 경력에 따라 소개의 길이가 정해진다고 가정한다면, 원저자 소개가 번역가 소개보다 길기 위해서는 원저자의 경력이 번역가의 경력보다 길어야 한다. 같은 회차의 '안정감 주는 저자 소개' 방식에 따르면 결국 저자의 소개문 길이는 저서와 관련 경력에 따라 결정될 것이고, 역자 소개문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보아 저자는 저술 경험이 많아야 하고, 역자는 그보다 적어야 한다. 반대로, 번역할 가치가 충분하더라도 그 책이 저자의 첫 저서인 한편, 역자는 번역서를 다수 출간하여 (최소한 경력으로만 판단하면) 능숙한 기술자인 번역서라면 '재고의 여지 없이 무시'해야 한다. 바람직한 판단 기준인가?


둘째, 위 경우에서 이어 생각하여, 그렇다면 번역자의 번역 경력은 축소하고, 관련 학력 및 직무 경력도 최소화하여 원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면 어떨까? 내 생각에, 원서가 번역되는 순간 원저자의 기여는 반 이하로 줄어든다. 번역문 독자에게 전달되는 나머지 내용 반 이상은 번역가가, 또 편집자에게 달려 있다. (그래서 번역가와 편집자의 어깨가 무거운 것이고, 그렇게 보면 번역자가 받는 작업 기간과 대우는 책임과 중요성에 비하여 형편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별개의 주제다) 번역서 제1의 필자는 원저자, 제2의 필자는 번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다, 극단적으로까지 말해 제1의 필자가 번역가라고 해도 완벽하게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긍정적 예는 아니겠지만, 탈무드에 나오듯 원저자라는 팔다리와 심장이 아무리 고생해서 사자의 젖을 구해와도 번역가라는 혀가 '이것은 개의 젖입니다'라고 말하면 만사휴의다. 그래서 번역가는 원저자 못지 않게 책을 고르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렇다면 번역가 소개 중 최소한 관련 주제와 번역서에 연관이 있는 부분은 최대한 살려 줘야 독자가 안심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저자 경력이 일천하고 역자 경력이 길 경우 역자 소개가 더 길어지는 일은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


요컨대, 최소한 해당 서적의 주제와 관련한 사항이라면 독자에게 유용한 판단 기준이 될 번역가의 경력은 실제로 길 뿐 아니라 길게 소개될 수록 좋다. 그것이 원저자 소개보다 길고 짧고는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이렇게 글 하나를 쓰게 된 이유라면.. 드디어 출판된 <The Bitcoin Standard>, 한국어판 제목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에서 내 소개가 저자 소개보다 길어졌기 때문이다. 이제껏 내가 번역한 책 가운데 처음 벌어진 현상이다. 저자의 첫 저서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만, 비트코인이 폭락하든 말든 화폐의 본질을 (그리고 트렌디한 포인트라면 블록체인 고찰도 포함하여) 합당한 관점에서 보게 만드는 좋은 책이다. 12월 1일이 되면 <익명의 독서중독자> 예약구매 버튼을 누를 계획이지만, <익명>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을 짚고 넘어가기 위해 이 글을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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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얘기는 경제학 족보에 있는데, 내 경우에는 판매채널도 수요를 창출한다.


트위터에서 알게 되었다가 종이책 출간 소식을 듣고 산 반-바지의 <슈뢰딩거의 고양희>부터 텀블벅 지름의 역사가 시작되는데, 책만 해도 이후 <전국투표전도 2018>, <동이귀괴물집>, <검은사전>, <마음을 움직이는 배색 스타일 핸드북>까지 이어진다. (<중세의 전쟁>도 있는데, 사실 이건 '중세 화투를 샀더니 책이 사은품으로 같이 왔네?'라는 마음가짐으로 산 거라.. 물론 책이 좋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그냥 이 중세 화투 하나가 가지고 싶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책 아직도 안 읽음) 왠지 '이런 책은 오프라인 서점에는 안 깔릴 것 같은데 안 사면 후회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것이 텀블벅 프로젝트의 (내 개인적) 셀링 포인트가 아닌가 자평 및 반성 중이다. 낱낱이 밝히지는 않겠으나 저 다섯 권 중 오프라인 또는 인터넷에서 결정했다면 결국 안 샀을 책이 세 권은 될 듯...


생각해 보면 하나 빼고는 텀블벅 프로젝트의 특성 때문에 사게 된 책들이다. 그런 면에서 <슈뢰딩거>를 이어 트위터 지름의 계보를 잇게 된 소책자가 있었으니 바로 <타이완 기담보>. 페이지도 필요 없을 정도로 얇은 괴담집이다. 위에 텀블벅 이야기 하다 보니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사실인데, 나는 괴담/오컬트 자료집을 좋아한다. (아마 이벤트 통해 1차로 팔았다 반응이 좋아 2차 판매에 들어간 듯한데) 일반 서점에는 깔지 않고 직판 및 로컬 독립 특수 등등 일부 서점을 통해서만 팔고 있다. 11월 말까지는 트위터 DM을 주면 배송해 준다고 하지만 트위터는 읽는 것이지 쓰는 것이 아니라는 신념을 지키고자, 어쩌다 쓰게 된 오후 여유시간을 <기담보>를 찾아 아래와 같이 보내게 되었다.


상수역 - gaga99page 방문 (실패). 건물 주변에서 5분 헤메고, 결국 3층까지 올라가는 데 실패. 어차피 시간도 남는 것, 원래 가려 했던 아침달 북스토어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연남동 - 아침달 도착. 목적물을 발견했으나 여기까지 와서 이것만 사면 취향이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므로 아래와 같이 구매

 - <타이완 기담보>

 -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 : 보통 서점이었다면 소재를 보나 문체를 보나 이런 류 책은 사지 않았을 듯한데, 또 큐레이션 서점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 김에 집어들게 됨. 그리고 집에서 읽어봐도 나쁘지 않음

 - <고맙습니다> : 올리버 색스 저, 김명남 역 이라는 조합에 책도 얇은 김에 충동구매

 - 2/3 노트 : 아침달 특산품-_-이라서 같이...

 + 2만원 이상 구매하면 역시 아침달 특산품-_- 인 마스킹 테이프 2종 중 1종 무료. 문양도 좋겠지만 한글이 아이들에게 더 자극적이지 않을까 해서 시구로 선택


그리고 또 어차피 시간도 남고 운동도 할 겸 집까지 걸어오는 길을 설정하다, 이름만 듣고 육교에서만 보던 경의선 책거리를 통과하기로 결정. 책을 더 살 생각은 (솔직히 없진 않고) 많지 않았는데, 세계시인선이 잘 전시된 문학 컨테이너가 눈에 띄어 들어가려다 문이 잠겨 180도 돌았다가 사장님과 눈이 마주쳐 멋적은 김에 바로 옆 컨테이너로 들어감. 역시 몇 권 구경하다, 한 권 구매.


경의선책거리

 - <만엽집 읽기> : 또 수집하기 좋아하는 책이라면, 익숙치 않으나 언젠간 배워야지 하는 언어의 대역문고 등 자료.


가게를 나서 집으로 다시 걸어오다, 역시 시간도 남는데 글벗서점이나 갈까 하여 가던 길을 다시 돌려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예전 헌책방을 검색하다 간판만 보았던 숨어있는책방을 발견.. 했다고 하면 조금 건조한 표현이고, 내국인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중국유학생라운지인가 하는 건물을 신기하게 보며 한 50m 지나쳐 갔다가 '잠깐, 방금 무슨 서점을 본 것 같은데?' 하고 뒤돌아보았더니 역시 그 서점이었다 하는 얘기다. 뭐 별 거 있겠어, 한 10~20분 있다가 한 두 권 집어들고 글벗서점 가야지 하던 마음가짐이었는데 결국 여기서 1시간 넘게 보내고 체력이 고갈되어 글벗서점 방문은 포기.


동교동(이라고 하면 나는 감이 잘 안 와서 신촌 근처 골목이라고 하겠지만)

 - <지상아> : 법의학에도 관심이 있다. 이 정도 되면 거의 고서급 아닌가 싶은데 (아님) 왠지 장르소설 서가에 꽂혀 있던 걸 그대로 낚아챔

 - <괴담> : 괴담으로 분류해야 하나? 아니면 (가공된) 설화집? <괴담의 과학> 등에서 마주친 라프카디오 헌의 이름을 보고 선택. 이야기가 짤막짤막해서도 좋음

 - <채지충 고전만화시리즈 사기>

 - <고전만화시리즈 장자 - 자연의 피리소리>

 - <자연적소성 - 장자설 (대만판)>

 : 위 셋은 채지충 만화. 대학 때였는지 고등학교 때였는지 채지충 만화를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어 몇 년 전에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타이틀도 무관하게 몇 권을 사들였는데, 재밌던 게 재밌었던거지 채지충 만화라고 다 재미있지는 않다는 쓰라린 깨달음을 얻음. 하지만 사기나 장자 정도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또 <자연적소성>은 역시 내가 좋아하는 외국어 자료라 보자마자 집어듦.


그리하여 하루 오프라인 (소)책(자) 구매 기록을 9권으로 경신함. 다행인지 뭔지 얇은 책들이라 다 합해도 두께는 반 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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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 Bitcoin Standard 완역 원고를 제출했다. 전에도 얘기했듯 세 번에 나눠 제출하는 일정 덕분에 마감일까지 여유 없이 작업해야 했다. 예전 같으면 마감 전부터 다음 일에 지원했겠지만, 이번에는 최소 이번 달까지는 쉬려 한다. 물론 그러다 보면 어차피 올해 말까지 두 권 더 하기는 힘들테니 한 권만 더 하자는 생각에 더더욱 쉬게 될 가능성도 낮지 않다.


'비트코인은 틀리지만 블록체인은 맞다', '비트코인은 허상이지만 블록체인은 비트코인과 분리하여 활용할 가치가 충분한 기술이다'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바라보는 지배적 시각이다. 그런데 저자가 화폐의 본질과 역사를 오스트리아 학파, 또는 자유지상주의 견지에서 살펴본 후 내리는 결론은 '비트코인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비트코인 아닌) 블록체인은 아니다'다. 물론 초점은 비트코인이 지닌 경화 특성에 있지만, 열기가 한 차례 빠져나간 후에도 블록체인이 유지하는 관심이 만만치 않은 현 상황에서 보자면, 화제의 중심은 오히려 본문 기준 6% 분량밖에 되지 않는 마지막 소챕터 'Blockchain Technology'에 두어도 큰 실수는 아닐 듯하다.


왜 블록체인을 쓰는가? 비트코인의 존재의의는 권력, 금융사 같은 중개자를 거치지 않고도 사용 가능한 자주적 화폐라는 데 있다. 거래 현장에서 현금을 바로 주고받지 않는 이상은 그것이 거래 상대방이 되었듯 금융사라는 중개자가 되었든 누군가를 '믿어야만' 하는 현재 경제체제에 비하여, 비트코인을 사용할 때는 본인 말고 누구도 믿을 필요가 없다. 이를 가능케 하는 요소가 바로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연산력 50%를 동원하지 않고서는 사기를 치지 못하는 체계, 바로 블록체인이다.


신뢰 0%, 검증 100%로 만들어 낸 블록체인은 효율 관점에서 볼 때 매우 비효율적이다. 탈중앙 분산 장부는 중앙식 처리방식에 비하여 효율이 극히 낮다. 현 상태에서 비트코인 거래량은 하루에 300,000건 정도고, (개선되기 어렵고 또 개선되지 않는 편이 나을) 기술적 한계로 앞으로도 500,000건을 넘기 어렵기 때문에 보급형 노트북 한 대로도 두 시간만에 처리할 수 있다. 그만한 일을 처리하는 데 현재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들이는 힘은, 노트북 2조 대 분이다. 즉, 1조 9,999만 9,999대는 중개자와 신뢰를 필요 없게 만드는 데 쓰이는 셈이다. 


초국가적 경화를 운영하는 경우라면 그 정도 '낭비'를 감당할 수 있다. 잘 해 봤자 '일정 수준 이상의 인플레이션'을 목표로 삼는 중앙은행 등 어떠한 권력과 중개자도 배제할 수 있는 (현재로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갔더라도, 규모가 80조 달러에 달하는 전 세계 화폐 시장을 잠식해 나가며 회수 가능하다. 또, 비트코인의 경우에 한정하여 말한다면, 기록이 비교적 단순하고 블록 크기가 1MB로 제한된 덕분에 장부 크기 증가 속도가 비교적 늦다. 9년 동안 운영한 비트코인 블록체인 크기가 200GB 정도인데, 몇 년 전이면 몰라도 이제는 이해당사자 개인이 돌리기에 크게 부담되지는 않는 규모다.


다른 분야는 어떨까? 그만한 낭비를 벌충할 만한 이익이 잠재적으로 있을 만한 (또는 그렇다고 대대적으로 홍보된) 분야를 저자는 

1. 디지털 결제 처리, 

2. 계약, 

3. 데이터베이스 관리

등 세 가지 들고 각각 현실성을 분석했다. 자세한 내용이야 책에 있으니 생략하고 저자의 의견을 말하면, 

- 앞에서 말했듯 블록체인은 거래 처리 효율로 봤을 때 현재 지배적 기술보다 크게 열등하므로, 현행 금융 결제 처리에 경쟁력이 없다.

- '스마트 계약'은 '코드가 법'이라고 내세우는데, 그렇다면 지금 법체계에서 법률 전문가가 지닌 우위가 지금 해당 언어에 능통한 프로그래머에게 옮겨갈 뿐이다. 또 DAO 사태에서 보았듯, 사실은 '코드가 법'조차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 등기 등 데이터베이스의 신뢰성을 높이려 한들, 이 블록체인의 신뢰성은 해당 자산과 블록체인 사이에 존재하는 기록/관리 책임자의 신뢰성을 넘지 못한다.

- 중개자를 없애려고 만든 기술을 중개자(예컨대 금융기관)가 채택해 봤자 성과가 개선될 턱이 없고, 또 (법률 분야처럼) 중개자가 여전히 필요하다면 연산력을 낭비한 보람도 없다.

정도가, 요약이라기보다는 일부 발췌 내용이다. 


무엇보다도, 블록체인 기술(그런 것이 있다면 말이지만)은 만천하에 공개된 지 9년이 지났지만, 이제껏 시제품 이상을 달성한 사례가 없다는 것도 비트코인 아닌 블록체인은 무용하다는 실증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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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진행 2018. 5. 5. 00:39

지난 4월 중반부터 드디어 오랜만에 정식 작업 중이다. 중단 기간이 1년이 되기 전에 다시 시작하게 되어 기쁘기는 한데, 샘플 모집 시에 걸려 있던 3개월이라는 일반 조건 뒤에 '알고 보니' 부가조건이 붙어 있어 꽤 부담이 된다. 체감상으로는, 서너 권 째를 완료하고 돌이켜 보니 '그 때는 대체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왜 한다고 했을까'라고 의아해질 정도이던 첫 번째 단독 번역 책과 별 다르지 않다. 게다가 이 작업도 한동안 쉬고 나면 손과 머리가 굳는지, 첫 2주 정도는 속도가 나지 않아 마음고생을 했다. 다행히 지금은 어느 정도 속도가 돌아온 듯하다. 


(개인 기록용으로 남겨두는데, 번역 일을 놓은 지 넉 달 정도 되었을 때 치른 2017년 토익 점수는 번역을 끊이지 않고 했던 2016년 토익 점수보다 15점이 떨어졌다. '영어는 꾸준히 해야 한다'는 말에 뒷받침이 되는 사례인데, 올해 시험 결과는 과연 '점수는 한 번 떨어졌어도 다시 꾸준히 하면 돌아온다. 마치 10년만에 자전거 타기처럼'을 뒷받침할지.)


이것도 수주하는 데까지 약간 곡절이 있었다. 직전 샘플 지원 건에서 '또' 실패했는데, 팀장님이 메일로 실패 사실을 알리면서 '지금 샘플 진행중인 다른 책에 지원해 보면 어떻겠냐'고 물어주셨다. 정식 모집시에도 지원할까 잠시 고민했던 책이기는 한데, 아무래도 전공과 경력에 지나치게 딱 들어맞는 듯하여 그때도 지원하지 않고 이번에도 고사했다. 그러고 10분인가 후에 수주게시판에 이 책이 올라왔다. 주제가 이미 한 풀 꺾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번에도 지원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정식 모집 개시 후 10분이 지나 무심코 들어가 보니, 평소 같으면 5분 이내에 지원자 수가 찼을텐데 아직도 '지원 가능' 상태인 거다. 내가 또 비트코인하고 인연이 없는 것도 아니니 한 번 지원해 볼까, 하는 생각에 지원 버튼을 누르고 샘플을 내고 합격을 했다. 


제목에서 보듯 비트코인 얘기다. 그런데 'standard'는 금본위제, 즉 'gold standard'와 용법이 같다. 그러니 제목은 직역하면 '비트코인본위제'다. 아직 초벌도 완성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금까지 책에서 받은 인상만으로도 장단점이 뚜렷하다. 구분하지 않고 묶어서 써 보면

- 내용 중 반 이상이 비트코인 자체보다는 기초적 화폐론, 그리고 건전화폐=경화=대략 금이 화폐로서 좋은 점을 다루는 데 쓰였다. 출판사에서 제목을 어떻게 뽑을지 모르겠는데, '비트코인'에 끌려 읽은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당황할 수도 있겠다.

- 서술 방식이 간결하다고는 못 하겠다. 초벌은 되도록 원문 구조대로 하는데, 교정은 손을 대야 할지 고민중이다. 그리고 납품본에서 원문을 되도록 유지한다 해도, 최종본은 수정이 많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한 번 읽기에는 재미있지만 굳이 안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 꽤 있다. 현대예술 부분 등은 동의할 사람도 많겠지만 공격할 사람도 많을 것인데, 그 중에는 예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주제까지 버릴 사람도 분명 꽤 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현대예술보다는 가족제도가 더 마음에 안 드는 예시다.

- 그런데 (직접 번역한 영향인지는 몰라도) 설득력은 굉장하다. 챕터로는 40% 정도 되지만 분량으로는 20% 정도 될 4장까지 작업하면서 전체 논지에 공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바로 앞 문제가 아쉽기는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그 역시 책의 개성 아닌가 싶다. 어차피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면 단점을 보강하느니 장점과 개성을 더 두드러지게 하는 편이 나을지도.


결론을 말하자면 이 역시 좋은 책이다. 요청대로 특별한 일정에 따라 납품하는 만큼 빠르게 나왔으면 한다.



그리고, 비트코인이라는 주제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힘을 잃었을까? 1주일 전 쯤 저자의 다른 책을 검색하려고 아마존에 들어갔다가 확인한 이 책의 판매순위는, 킨들 판 경제경영서 중 1위였다. 그리고 한때 7백만원선까지 깨졌던 비트코인 시세는 요즘 원화 기준 1천만원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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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말 이후 오랜만에 샘플 작업 중이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비록 정식 번역 작업은 아니지만 충실감을 느껴본다. 방향을 어디로 잡고 무엇을 하든 매일매일 몸만 열심히 움직이면 제대로 사는 거라는 맹목적 근면 지상주의의 혐의가 엿보이기는 한다. 어쨌든 표면적으로 내세울 만한 근거는, 원래 그래서는 안 되지만 무산노동자로서 자투리가 될 수밖에 없는 시간을 그나마 유용하게 - 독서와 어학학습, 그리고 (샘플의 경우 선정된다면) 시간 환금까지 동시에 달성하는 방식으로 - 보내는 방법이라는 데 있다. 지난 3년을 통틀어 몸은 가장 분주하고 마음은 가장 번잡했던 4개월을 보냈지만, 돌이켜 보면 역시 '하려면 못 할 것은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해야 했느냐'고 물어본다면, '하는 이상으로 가치있게 보냈다'고 말할 수 있어 다행이기도 하다.


이렇게 새 책에 착수할 지도 모르는 상태인데, 전공이 딱 들어맞지는 않는 이번 샘플에 덜컥 지원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1주 전에 받은 연락이다. <Txt me>를 납품받은 출판사가 검토 결과 출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기획서와 완역 원고 내용이 달라서라고 한다. 선인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게 지급한 비용, 담당자가 소비한 직간접 및 시간 상 기회비용 등을 고려하면 정말 예기치 못한 결론이다. 게다가 번역자로서 말하건대 이 책은 마케팅 전문가가 말하는 스마트폰의 사회적 영향력을 여러 각도에서 흥미롭게 다룬 양서다. 기획 당시 생각했던 것보다 내용이 너무 깊었는지 아니면 너무 얕았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한계이익조차 건지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으니 출간을 접었을텐데, 번역료는 받았으니 금전적으로야 아쉬울 것 없고 그저, 죽어서 이젠 없지만 출판사 컴퓨터 안에서는 살아가는 한국어 번역본의 첫 독자로서 아쉬울 뿐이다.


그리하여 내 '인생의 무게 下' (내 경우에는 기납품 미출간이며 향후 출간 전망도 굉장히 낮다고 판단하는 원고) 목록은 <Modernist Cuisine (중 극히 일부)>, <Smart Growth>, <Txt Me> 등 셋으로 늘었다. 그 중에도 <Txt Me>는 실종(사망 추정)이 아닌 사망 확정으로서 최초 타이틀을 가져갔다. 최초의 계약, 최초의 단독 계약, 최초의 지명 계약, 최초의 인세 제안... 그리고 최초의 출간 불발 확정까지. 최초는 계속된다. 어떤 최초일지 예상하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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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에 출판되었을 책이다.

지금 제목으로는 인터넷 서점에서 '절판'으로조차 검색되지 않는다.

해답편이 잘려나가 서지도 확인 불가하다. (그래서 출판 년도가 확실치 않다)

이 헌책의 가격은?


답 : 10,000원. 배송비 합하면 12,500원.



고등학생 때 학원 교재였다. 한낱 참고서를 (그것도 심각한 하자품을) 저 가격 주고 헌책으로 산 이유는 우선 기억에 남아서, 둘째 없으니까다.


저자는 고급 지문을 풍부하게 수록했다. '인용된 작품과 저자' 앞 몇 줄만 인용해 보아도 <A Little Cloud>(James Joyce), <A look at Our Schools>(P. Mort & W. Vincent), <A study of History>(Arnold J. Toynbee), <A writer's Notebook>(W. Somerset Maugham) 등등. 특별히 영어 관련 배경이 없는 고등학생이 읽기에는 부담스러워 보이는데, 그게 또 흥미로울 만한 부분만 짤막짤막하게 적혀 있다 보니 난이도도 적당하게 높으면서 기가 꺾일 만큼 지루하지 않았다. 요지가 계속 머리에 남아 있던 아래 사례를 이제 다시 들춰보니, 부모 처지에 선 지금 느낌이 새롭다. 완전히 동의하지도 않고 완전히 반대할 수도 없는 화두다.


A child develops best when, like a young plant, he is left undisturbed in the same soil. Too much travel, too much variety of impressions are not good for the young and cause them as they grow up to become incapable of enduring fruitful monotony. I do not mean that monotony has any merits of its own; I mean only that certain good things are not possible except where there is a certain degree of monotony.

- Bertrand Russell, <The Conquest of Happiness>



그런 책이 왜 없어졌느냐. 언젠가 시간이 나면 들춰보겠지 하는 마음으로 대학 진학 후에도 고이 모셔두던 책을 정말 써먹게 된 기회는 영어 과외였다. 영어만 못했다고 기억하는 동생 친구를 가르칠 때, 시작한 지 몇 달 지나 어느 정도 기초를 잡았다고 판단한 나는 이 책을 주고 매 번마다 지문 몇 개씩을 해석하는 숙제를 내 주었다. 해답도 같이 주었는지는 모르겠는데, 해답을 보며 숙제를 한다 해도 도움은 충분히 되었을 것이다. 그 후 어느 정도 지나자, 원래 실력과 지문의 난이도를 아는 나로서는 가끔 놀랄 만큼, 학생은 독해에 능해졌다. 이제는 혼자 공부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들어 나는 과외를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다 마치지 않은) 이 책은 보잘것없으나마 선물로 주었다. 그러고 나서 학생의 동생에게 수학 과외를 이어서 하게 된 일은 주제와는 별 상관 없는 이야기다.


선물로 주고 난 직후부터 나는 헌책방을 갈 때마다, 헌책방 사이트를 뒤질 때마다 이 책을 찾았다. 출판 시기가 꽤 오래되었고 추정컨대 그리 잘 팔리지도 않은 듯하다는 점이 지금까지 실패한 원인 중에서도 첫 번째이자 근본 이유라면, 두 번째이자 사소한 이유는 이 책 제목을 '그랜드 종합영어'로 잘못 기억했다는 것이다. 이는 검색 실패 뿐 아니라 검색 오류로까지 이어져, 웬 상태 안 좋은 중학교 영어책을 2,000원에 샀다가 바로 분리수거한 일까지 야기했다. (사이트에는 실물 사진이 없었다. 판매자도 누가 이런 걸 진짜 사네 하고 의아했을 것이다.)


길었던 지난 연휴 중 하루, 뿌리서점을 다녀온 후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키워드를 습관처럼 검색했다가 이 빨간 표지를 본 것이다. '해답쪽 뒤쪽이 없'읍'니다', '상태 : 하' 라는 내용은 즉시구매를 클릭하는 손가락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리하여 15년에 걸친 탐색은 결국 승리로 끝난 것이다. 아무리 나라도 이 책에 예컨대 5만원을 내야 한다면 주저했겠지만, 12,500원은 갈증을 풀기에 충분히 쓸 만한 금액이었다.


그리하여 내가 찾는 헌책은 이제 두 권으로 줄었다. 한 권은 물량은 꽤 있지만 절판되어 가격이 새책의 세 배로 올랐을 뿐이니 돈만 내면 살 수 있지만, 오기가 있어 아직 판매자의 농간에 넘어가지 않고 있다. (물론 이 책 판매자의 농간에는 넘어갔지만.) 그리고 한 권은 글벗서점에서 들춰본 러시아어 잡지인데, 제목도 호수도 모른다. 이건 평생 구할 수 없으리라. 결혼 전 아내가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드는 건 고민하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사는 편이 돈과 시간을 절약하는 지름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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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xt Me

번역/진행 2017. 5. 1. 16:48

작년 12월 말에 가족과 함께 괌에 다녀왔다. 9월부터 시작한 Money Changes Everything 초고를 여행 이틀 전에 마쳐, 깔끔하게 일거리를 놓고 가게 되어 마음이 편했다. 하긴 마음이 편하지 않아봤자 가족여행에서 내(그리고 나와 같은 아빠) 역할이 어떤 것인지 안다면 어차피 큰 성과를 낼 수는 없지만.


이틀째인가, 해변에 나갔다 오니 바른번역에서 부재 중 전화가 와 있었다. 지금 하는 일 데드라인이 석달이나 남았으니 샘플 의뢰는 아닐텐데 대체 뭔가 하며 전화를 걸어보니 새 책 의뢰였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의뢰한 일정이 3월 말까지. 원하는 일정을 말해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3월 말부터 착수할 만한 여유는 없다 했다. 최소 5월말까지는 있어야 할 것 같다 하고, 일단 초안을 번역해 보았다.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통계 방식과 정확도 향상이 사회에 끼칠만한 위험을 다루어보는 책인데 전개방식으로 보나 주제로 보나 딱 내가 맡을 만한 책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일정이 도저히 맞지 않아 공개 모집을 통해 다른 분이 맡게 되었다. 초안이나마 2장까지 휙휙 진행해 보았고 그러다보니 4월말까지는 못할 것도 없겠다 생각이 들어 아쉬웠지만, 외관상 평판이나 개인 일정 및 건강을 생각하면 실망할 일은 아니다.


그러고 한 주였나, 같은 출판사에서 바른번역을 통해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다른 책으로 5월말까지, 그리고 필요시 일정 조정 가능하다는 조건이었다. 파일을 휙 넘겨보니 대충 핸드폰 얘기인 듯한데.. 내 성향이나 커리어를 생각하면 딱 맞아떨어지는 듯하지는 않아 지난 번 책을 놓친 것이 더욱 아쉬워지기는 했다. 그래도 같은 출판사에서 뭘 그렇게까지 잘 봐주었나 하는 고마움이 들어 마음에 드는 책이라고 반쯤 영혼을 섞어 답했다. 일정은 6월 중순까지. 그 <Txt Me>를 어제 화면상 교정(그러니 1교)까지 마쳤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정리하면, 마케팅 업계에서 모바일/디지털 추세를 몸소 체험하고 여기에 올라타 나름대로의 업적을 쌓은 유명 경영계 인사가 쓴 스마트폰 찬가다. 이제 안경이나 속옷과 다를 바 없이 확장된 신체 또는 부속지가 된 스마트폰을 주제로 한다면 보통은 스마트폰의 해악이나 최소한 주의할 점을 중심에 깔면서, 유통업 등 스마트폰이 충격을 가져온 분야 같이 비교적 중립적인 지역까지 다루지 않을까? 집중력 저하, 인간관계 단절, 언어 파괴 등을 소재로 삼아서. 그런데 저자 보닌 버(Bonin Bough)가 보는 스마트폰이란, 일단 경영 부문에서만 보아도 유통업 파괴자 역할에서 그치지 않고 음악 산업의 새로운 구세주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음악 불법복제는 데스크탑 시대의 유물이지, 차라리 스트리밍 결제가 속 편한 스마트폰 시대까지 이어질 해악은 아니라는 것이다. 언어 파괴? 스마트폰과 인터넷 시대에 언어가 파괴된다 해도, 언어가 인터넷에서 더 많이 쓰이기 때문에 더 많이 파괴될 뿐이다. 심지어 포르노그래피조차도 '새로운 성교육'이라는 제목 아래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역할마저 했다는 식으로 다룬다. 스마트폰 읽기에 따른 독해능력 저하 정도야, 새로운 매체의 도입에 따른 그야말로 'side' effect 정도로 넘겨버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모든 여건이 동일할 때 놓친 책과 이 책을 놓고 고르라 했다면 나는 십중 십 놓친 책을 골랐을 것이다. 주제, 전개방식, 커리어, 주 관심사를 볼 때 놓친 책은 모든 면에서 나와 그야말로 딱 맞는 책이다. 마치 만나기 전에 나열한 이상형의 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상대처럼. 하지만 (이번 책을 번역하며 참고한 <모던 러브>에서 명확하게 든 반례에서 보았듯) 그런 조건이 '만나보니, 알고 보니' 이상적인 짝을 만나는 데 진정 기여할까? 초고를 마쳤을 때나 1교를 마친 지금이나 드는 생각인데, 나는 지난 책을 놓치고 이번 책을 맡게 된 행운에 감사한다. 반복하자면 주제, 전개방식, 커리어, 주 관심사 면에서 최선과 (지나치게 많이는 아니고) 약간씩 어긋나기에 그만큼 내게 적당한 책이었다. (미드에서라면 you complete me 내지는 it completes me 정도 표현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책 덕분에 내가 complete 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그 사람들도 사귀거나 결혼한다고 complete해 진 것은 아니니까)


하나만 더 기록한다. 저자 경력은 마케팅 분야다. 그런데 1장부터 10장까지 제목을 보며 짚어보면, 언어/육아/성/정치/기억/혁신 등 마케팅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분야까지도 꽤 흥미롭게 짚어낸다. 이처럼 다양한 근거는 일하면서 수집한 것일까? 아니면 본업과는 약간 거리를 둔 일종의 취미 또는 외도로 연구한 것일까? 업계 관계자용 전문 서적이 아니라 대중서를 쓴다면 이 정도 넓이와 깊이(소위 T형)는 갖추어야겠기에 드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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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헌책

독서 2017. 4. 18. 00:22


스트레스가 쌓이면 옷이나 가방 쇼핑으로, 폭식으로 푸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도 다를 바 없다. 내 경우에는 책, 그것도 헌책이다. 3년 전 부산 살 때는 보수동 헌책방 거리가 나름대로 지역 명물이어서 회사를 땡땡이치고 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거리가 애매해서 몇 번 못 갔지만 어쨌든 그런 장소가 근처에 있다는 정도만 해도 마음이 안정되고 타향 생활에 진정제가 되며, 아직도 아무런 연고가 없는 나를 (그것도 첫 애가 백일을 막 넘겼을 무렵) 보냈는지 이해할 수 없는데다 안그래도 심란한 마음을 다독이지는 못할 망정 속을 뒤집어놓던 김모 당시 과장에게 '시발 그럼 내가 때려치고 너 때문이라고 할테니 니가 가'라고 하고 싶던 마음이 사르륵 사라지는 정도였다고 하면 그건 물론 지나치게 나간 것이다. 그 정도 장점은 "'심지어!' 군대에 가서도 얻어올 것이 있다"는 정도 되는, 이삭줍기에 비할 만하다. 어쨌든 보수동은 그 정도 의미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부산에 처음 가 개소식 초청을 위해 시내를 돌아다닐 때 알라딘 헌책방을 발견하고 (지금 생각하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동행하던 금 팀장에게 '여기 들렀다 갈테니 이따 만나자'라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고, 부산에 가기 전 흑석동 시절에 가끔 용산을 갈 때는 헌책방계의 올드스쿨 전형이라 할 뿌리서점을 몇 번 들러 책을 사기도 팔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사는 동네에서 '조금 많이' 걸어가면 유명한 공씨책방, 얼마 전에 무려 할리스를 밀어내고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영업하는 글벗서점, 신촌 거리 한복판에 있는 알라딘 헌책방 신촌점이 있다.


보수동에 아쉽고 공씨책방에 아쉬운 것이라면 규모다. 공씨책방은 여기저기서 언급되는 빈도를 볼 때 오래 영업했다는 상징성은 있겠지만 이를 제외하면 그냥 조그마한 헌책방이다. 보수동에는 책방이 널렸지만, 내가 가본 중 대우서점, 우리글방, 대영서점 정도를 제외하면 다 규모가 고만고만하다. 헌책방에 규모가 왜 중요한가? 물론 찾는 책이 확실해서 주인에게 '이 책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사람에게는 별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상상하기로, 그렇게 물으면 주인은 책을 찾아주거나, 아니면 인근 서점에 연락해서 거래를 중개해줄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딱히 찾는 책 없이 서점에 간다. 그리고 책장의 미로를 몇 번이고 돌며 마음에 드는 제목과 표지를 찾아나선다. 매장 규모가 작으면 일단 들일 수 있는 책 수도 그만큼 한정된다. 공간 제약을 극복하고자 책을 쌓아놓으면, 이제 '헌책방' 하면 연상되는 옛날식 헌책방 그림이 나온다. 즉 쌓여 꺼낼 엄두가 안 나는 책이, 서가에 꽂혀 그나마 꺼내볼 수 있는 책을 가리는 것이다. 그냥 둘러보기도 불편하고 소득도 적으며, 그렇다고 다짜고짜 주인에게 가서 '제가 좋아할 만한 책을 골라주세요!'라고 물을 수도 없다. (게다가 그렇게 물었더니 일면식도 없던 주인이 꺼내온 책 몇 권이 진짜 내 마음에 든다면 이건 또 그 나름대로 으스스하다) 결국 나는 헌책방마저도 어느 정도 규모가 되고, 어느 정도 큐레이션이 된 곳을 선호하게 된다. 마음으로는 동네 상권 침식을 비난하면서도 발길은 결국 대형 할인점을 향하고, 본분 망각을 공격하면서도 알라딘 헌책방에 안 들어갈 수 없다. (물론 알라딘 헌책방에서 헌책계의 진짜 보석을 찾을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만, 그렇다고 그냥 헌책방을 간다고 보석이 내 손에 잡히지는 않더라)


그래서 당분간은 글벗서점과 알라딘 신촌점이 주로 방문할 장소가 될 것이다. 기분이 울적한 요 2주동안 사댄 책이 저 사진에 나온 9권 + 아무리 방문자 없는 이곳이라도 지금은 공개하기 곤란하니 기다려달라고 말해야 할 1권이다.


- 고대중국의 이해, 사마천의 역사인식 : 나는 왜 글벗서점에서 이 두 권을 집었을까?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이건 다 그 전에 번역하던 <Money Changes All> 때문에 <관자>를 회사 도서관에 신청해서 보고 <중국화폐사>를 '전설의 원서 중고책 치고는 싸다'며 충동구매 했던 감정의 흐름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지난 토요일 미용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고대중국의 이해>를 넘기고 있자니, 춘추전국시대 다른 나라에서는 가장 높은 관리가 相이었지만 초나라에서는 시종 令尹이었다는, 현실에 아무 도움 안 되지만 또 중국의 확실한 지방색을 느낄 수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두 권을 과연 1년 내에 읽게 될지는 확실치 않다.


- 어쩌고저쩌고 Civil War : 미국 쪽 책을 번역하다 보면 레퍼런스로 쓸 때가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샀다. 그러고보면 첫 전자책인 <율리시즈 그랜트>(나는 왜 원어 발음을 하나하나 검토했으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제목은 표준표기안을 찾아보지 않은 것인가) 번역할 때 살 걸 그랬다. 그 다음 두 권과 함께 공씨책방에서 샀다.


- 손에 잡히는 아두이노 : 나는 라즈베리파이에 더 관심이 있지만, 그래도 기계 제어에는 아두이노가 낫다는 사실도 경험했다. 물론 지금처럼 시리얼 통신으로 제어하는 이상의 뭔가를 하게 될지는 역시 미지의 영역이나, 이 역시 '언젠가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때 불현듯 찾아본 이 책이 광명을 내려줄지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집었다.


- 세계사를 품은 영어 이야기 : 취미로 번역을 하다보니 영어의 역사에도 관심이 간다. 굉장히 자세한 책이라기보다는 술술 읽히는 책에 가깝다. 그리고 굉장히 자세해서 한 번도 읽기 힘든 책의 효용과, 쉬워서 여러 번 읽히는 책의 효용은 딱 잘라 비교하기 힘들다.


- 백귀야행 베스트 下 : 백귀야행은 한때 내가 재미있게 보던 시리즈다. 부모님 댁에서 살 때 동생이 대여점에서 빌려와서 보기도 했고, 일부는 내가 사서 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흐름을 놓친 후 이제 20권대로 늘어난 이 책을 따라잡기는 버거울 듯하다. 하지만 베스트가 출동하면 어떨까? 알라딘에서 책등만 보고 그대로 집었는데, 아무래도 上도 사야 할 모양이다. 이렇게 충동구매는 후속구매를 부른다.


- 소유하지 않는 사랑 : 공씨책방에서 두 권짜리 릴케 시선을 보고 2권만 집었더니 같이 사야 한다고 하여 내려놓았다. 그런데 그 전까지만 해도 이름이나 알던 릴케가 갑자기 읽고 싶어진 것은 옛날에 본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두이노의 비가' 번역 문제를 다룬 글이 떠올랐기 때문인 듯하다. (확신은 못 하겠다) 그래서 알라딘에 가자마자 릴케를 검색하고 집어들었다. 1년 전쯤 말당 서정주 전집 1권을 읽고 (그 중 특히 초기작에) 오랜만에 시에 감동했는데, 과연 외국 시 번역본은 감흥을 줄까?


- 공산당 선언 : <Money Changes All> 때문에 로욜라도서관에서 번역본 몇 권을 비교해 보고, (1) 중역보다는 직역, (2) 가능한 최신역, (3) 문장력에 큰 차이가 없으면 옮긴이의 관련 경력 (또한 공역보다는 1인역) 등 나의 원칙에 따라 고른 역본은... 이 책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하지만 뭐 읽어볼 만한 책이니까 샀다. 부연하면 이 책을 포함하여 <자본론>, <국부론> 같은 책은 번역하다 보면 레퍼런스로 자주 언급되는데, 책이 두꺼운데다 사 두고도 완독하려면 아마 까라마조프 형제들을 읽은 다음이 되리라는 가능성 높은 예상 때문에 아마 읽기 전에 신판이 나올 듯해서 사기가 꺼려진다. 다만 김수행 교수가 고인이 된 지금, 당분간은 내 원칙에 부합하는 역본이 바뀔 가능성은 낮아 사둬도 되지 않나 하는 유혹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왜 재학중에 김수행 교수 강의를 하나도 듣지 않았던 것인가...


- Outsider : 번역본이 집에 있는데, 한번 원서로 읽어보자 -> 그런데 킨들로는 안 파네? -> 어차피 아마존 직구 할거니까 묶음배송 시켜야징 -> 어 초판 중고도 '그다지' 비싸지는 않잖아? 역시 책은 초판이지 

하는 마음으로 처음으로 아마존에서 헌책을 주문했다... '영국' 초판이 아니라 '미국' 초판이라는 사실은 접어둔 채.. collectible이라던 커버는, '아 이 책방은 이런 커버도 collect하는구나'하는 깨달음을 주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것은 좋은 책이다.

Posted by TUNC AU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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