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서와 자기계발서는 지금까지 구분되었지만, 인식은 점차 바뀌고 있다. 한 기사에서는 실용적 지식을 전달하는 경제/경영서는 사실상 자기계발서와 다름없다고 주장하며, 이 두 가지를 합한 서적이 연간 출판물 중 40% 정도를 차지하여 출판계에서 '사실상' 자기계발서의 비중이 매우 크다고 썼다.

대충 맞는 말이다. 독자가 스스로 한 번 걸러 규칙을 만들어 낼 필요 없이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를 제시한다는 데서 자기계발서와 경영서 대부분은 같다. 나도 (이렇게 말하면 자폭이지만) 수많은 샘플과 리뷰를 쓰면서 느낀 것이다. 다만 '대충' 이라는 단서를 붙여야 할 것이, '경제'서와 '경영'서는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와 '경영'이라는 단어 선택이 잘못되었다면 바꿔도 무방하다. 어쨌든 '공유경제는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를 자기계발서와 동류로 보기는 힘들다. 그 책은 경제 또는 경영 현상을 분석하여 제시할 뿐, '그렇다면 독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직접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독자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를 제시한다 해도, 그 행동이 기업 경영 수준에나 적용되는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자기계발서와 동류로 묶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짐 콜린스 책은 가정 주부, 나 같은 월급쟁이 회사원, 취업 준비생이 아니라 기업 경영자나 임원, 최소한 기획부서원 정도에게나 유용한 지침을 준다는 점에서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경영서로 봐야 한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내 번역 이력상 최초의 '자기계발서類(또는 流)' 경영서다. 실제로 대면한 번역 은사 두 분 중 한 분이 자기에게 자기계발서 번역 의뢰가 들어올 때마다 '자기계발서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배부른 투정을 부리셨다고 하는데, 나는 그 심정 이해한다. 제목은 잘 뽑아놨지만 읽어보면 하나마나한 뻔한 소리 나열에 그치는 양산형 자기계발서가 수도 없는데, 나처럼 이거 해서 돈도 벌긴 하지만 아직은 책 읽고 글 쓰기가 좋아서 취미로 하는 사람이 두세달 동안 그런 책이나 보고 있어야 한다면 순식간에 취미가 노동으로 둔갑하게 된다. 이 책은 취미로 번역할 수 있었다는 데서 운이 좋았다. (내가 아직 번역할 책을 고를 수 있는 위치에 있지는 않으니.) 

'모든 경우를 생각하고 대비하라' 같이 윗사람이라면 할 만 하지만 실제로 실행하기는 불가능한, 그래서 면피용 발언밖에는 안 되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현실에 맞춰 대응하라는 주제가 일단 마음에 든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다양하고 색다르다는 점도 좋다. 이 책 작업 시작한 시점이 아직 더울 때였는데, 참고문헌 중 하나인 <희박한 공기 속으로>를 읽으면서 몰입하다보니 잠시나마 서늘함마저 느꼈던 기억이 난다. 도쿄 통근철도망 설계에 점균을 활용했다는 사실도 옮기면서 뇌리에 박혔다. (이 부분을 옮길 때 장소와 시간 모두 기억나지만 여기에는 여백이 부족하여 쓸 수 없다.)

무엇보다도 가벼운 자기계발서라면 '규칙은 단순하게 만들어라'정도로 넘어갈 내용에 관하여, '단순한 규칙'의 생성 과정과 피드백을 중요하게 다룬 부분이 이 책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규칙은 사무실에 몇 시간 틀어박혀 고심한 끝에 '이거다!'하며 십계처럼 들고 나오는 절대불변의 규칙이 아니다. 과거 자료를 수집하고 (또는 이 기회에 생성해 보고) 분석하여 정제한 끝에 나오는, 현실을 관통하는 핵심이며, 또한 도출한 후에도 검증을 거쳐 수정될 수 있고, 상황이 바뀜에 따라 중요한 부분이 이동하면 폐기될 수 있는, 무거우면서도 가벼운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 주제를 '규칙을 간단히 만들어라'라고 요약한다면 이는 오독의 산물이거나, 최소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발언이다. 단순한 규칙은 절대 간단히 나오지 않는다. 단순한 규칙은 복잡한 규칙보다 적용하기 쉬울지 몰라도, 만들기는 훨씬 어렵다. 하지만 그것을 해 내면, 산이라도 옮길 수 있다. 해 낼 가치가 충분한 것이다. (역시 '번역은 번역가에게, 마케팅은 출판사에게'다. 저자도 아닌 잡스가 남긴 말을 마케팅 카피로 사용하다니..)

Posted by TUNC AU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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