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1년 1번역을 실천하듯 2019년도 반이 넘어간 시점에서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 출간 이후 1년만에 나온 책이지만, 이미 썼듯 사실은 납품한 지 2년도 넘은 시점에야 아무런 예고도 없이 출간되었다. 누군가에게 책을 줘야 하는 타이밍에 도저히 맞추지 못할 것 같아 결국 증정본이 오기 전에 내 돈 내고 오프라인 서점에서 사서 전달했는데, 또 납품에서 출간까지 걸린 시간에 비하면 번개같이 증정본이 도착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권은 안 사도 됐을텐데) 심지어 여름 여행으로 집을 며칠 비우게 된 첫날에 집 앞에 도착할 정도로. (아예 선택지가 없었으면 모르겠지만, 택배기사에게 남길 메시지를 선택할 수 있대서 '경비실에 맡겨주세요'를 눌렀건만 여행에서 돌아온 나를 (예상을 뒤엎지 않고) 문앞에서 고이 기다리고 있던 총 3,600페이지짜리 택배상자...)
옮긴이의 말에 썼듯 '원서는 훌륭했다'는 말은 자신있게 할 수 있고, 최소한 '긴가민가하면서 그냥 뭉개버린' 구절은 없다는 말까지도 할 수 있다. 물론 이 말은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표현이므로 내가 '이 책에는 오역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오역일 것 같은데 저자에게 확인하지 않고 가슴에 묻은' 부분은 없다는 말이고, 오역일 가능성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부분은 자신있게 넘어갔으리라는 말이다. 다시 럼스펠드의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명언을 반복하자면, 'known unknown'은 최소한 저자에게 물어보기는 했을지언정 'unknown unknown'은 그냥 unknown인 채로 묻혔을 것이다. (이거 옮긴이의 말 초안에 넣었다가 1. 욕을 먹든가 2. 어차피 편집자가 고칠 것 같아서 (이미 '전문직의 미래'에서 경험한 일) 알아서 뺐다)
다만 옮긴이의 말 관련하여 여기에만 기록을 남겨놓는다. 본문도 그렇지만, 옮긴이의 말이라면 출판 전에 절차상으로나마 (즉, 옮긴이의 의견을 반영하든 하지 않든) 번역자에게 확인은 한 번 해야 하지 않을까? '이게 웬일인가!' 같은 표현은 내가 쓴 것이 아니고 (나는 훨씬 심심하게 쓴다), 또 내가 제출한 안에서는 문장을 존대말로 썼다. 다시 짚고 넘어가자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편집자나 독자가 보기에는 교정본이 결과적으로 옳을 수 있다. 다만, 비록 주석과 그림 출처조차 모두 끝난, 정말 책의 마지막 부분에 세 쪽으로 들어가는 하찮은 옮긴이의 말이라 해도 최소한 찍혀 나오기 전에 보여주기나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어쨌든 책은 잘 나왔고, 가격에 비하면 생각보다 잘 팔리는 듯하며, 게다가 출판사 이름 역시 (무게감으로 먹고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문화원'이 아니라 (무게감은 덜한 대신 팔림성은 더해 보이는) '지식의날개'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마동팔 검사의 극대노를 불러일으킬) 표현대로, 번역자는 싫어도 원저자는 싫어하지 않는 정신으로 집안에 한 권 들여놓으면 특유의 두께 덕분에 빙하시대에 땔감으로 써도 얇아빠진 보통 책보다 며칠은 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고 목침으로도 훌륭하며 웬만한 총알도 막아줄 가정의 필수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소하게는, '남해 거품 사건' 같이 웬만한 금융사 책에서는 첫머리에 나오지만 사실 엊그제 일어난 일부터가 아니라 (그리고 로마제국은 그제 쯤 멸망했음), 뜬금없이 쐐기문자부터 나와버리고 춘추전국시대 관자를 들먹이는, 금융을 빙자하여 인류 역사를 조망해버리는 터무니없는 스케일도 즐겨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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