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동안 산 절판 중고책을 결산하는 과정은, 그간의 '안 읽을 책은 사지 말고 산 책은 좀 읽자'는 공허한 표어에 따라 반성하는 기회가 됨과 동시에, '읽을지 안 읽을지를 사보기 전에 어떻게 아냐'는 반항심을 다시 강화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올해는 테마를 약간 나눠가며 써본다. 

 

 

 

- 올해의 최고가 및 유사 주제

<현대 고고학의 이해> - 정가 40,000원, 구입가 64,500원(개인)

: 2015년에 번역 출판된 <현대 고고학 강의>의 풀버전인 이 책은 2006년에 번역 출간되었다. 원본은 2004년에 나온 4판으로, 그 후 판을 거듭하여 2020년에 8판이 나왔다고 하고 2024년에 9판이 나올 예정이다.

  <현대 고고학 강의>는 지난 여름에 KOCW에서 들었던 충남대 유용욱 교수의 '고고학 개론' 주교재로, 강의를 듣기 위해 새 책을 샀다가 이 책과 비교해 본 후 팔았다. '강의'에 나오는 모든 내용은 '이해'에 포함된다.

  유물을 좋아하지만 기초 강의 하나 들어본 적 없어 기본 체계를 전혀 갖추지 못했다면 앞으로 남은 수십년의 덕질 기초를 갖추기 위해서 들어볼 만한 강의고 읽어볼+사둘 만한 책이다. 최신판이 번역 출간된다면 이번엔 절판되기 전에 바로 사겠지만, 17년동안 판올림 없던 책이라 기대 없이 신간 알림에 올려둔다.

 

... 에 덧붙여, 같은 주제로 묶이는 두 권은 다음과 같다. 

<천 번의 붓질 한 번의 입맞춤> -  정가 20,000원, 구입가 6,500원(대전시청역점)

<고고학자 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 - 정가 14,500원, 구입가 7,800원(대전시청역점)

: 같은 강의 '역사학입문'의 보충교재로, 당시 실강에서 기말과제인 독후감 대상이었다. 다만 모든 수강생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동 강의의 현장학습에 이미 참여했던 재수강생(ㄷㄷ)이 현장학습을 대체하는 과제였다. 왜 여유 많은 학부생 때 이런저런 강의를 듣지 않았을까 후회하기도 하지만, 재수강 같은 얘기를 듣고 나면 역시 아무 부담 없이 지금 KOCW로 수업을 받는 편이 속 편한 듯하다.

  이런 책을 갖춰 놓으면, 예를 들어 지난 주처럼 갑자기 가족과 전곡리 박물관을 가게 되었을 때 근처 도서관을 가지 않고도 대략의 내용을 훑어 두고 현장에서 가이드 노릇을 할 수 있어 좋다. 웬만한 분야에서 그 정도 넓이와 깊이를 커버할 수 있는 장서가 내 기본 방향이다. 

 

...에 다시 덧붙여, 비슷한 주제로 묶이는 두 권은 다음과 같다.

<20세기 사학사> - 정가 12,000원, 구입가 25,000원(개인)

<일요일의 역사가(필리프 아리에스)> - 정가 16,000원, 구입가 8,100원(영등포점 현장)

: 그리고 마찬가지로 KOCW에서 들었던 중앙대 고원 교수의 '역사학입문' 주교재 중 하나가 <20세기 사학사>고, 같은 강의에서 다룬 아리에스의 책이라서 생각할 것도 없이 알림이 뜨자마자 산 책이 <일요일의 역사가>다. 아마도 주6일제였을 당시에 일요일 하루 휴일만으로, 방대한 자료와 공부량으로 석사학위만 받기에도 다른 학문과 차원이 다른 세월이 걸린다는 사학계에서 독립 연구자로 독창적 업적을 남긴 아리에스는 나의 (다양한) 지향점( 중 하나)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인터넷도 있고, 주5일제라 아리에스 같으면 사학 말고 다른 분과를 하나 더 골라 마찬가지 족적을 남겼을 법하다. 부끄러운 일이다.

...라고 써 두고 어쩐지 찜찜해서 찾아보니, 프랑스는 1936년부터 주5일 근무제였다고 한다. 역시 취미와 학문의 깊이는 여가시간에서 나온다. 아니 그러면 '토/일요일의 역사가' 아니면 최소한 '주말의 역사가'라고 했어야지! 

 

...이제는 역사/고고학/신화라는 공통점밖에는 없는 세 권은 아래와 같다.

<목간과 죽간으로 본 중국 고대 문화사>  - 정가 18,000원, 구입가 28,300원(개인)

: 사흘 전에 반차도 쓴 김에 세계문자박물관을 들렀다가 못 나올 뻔했다. 

<세계의 신화 전설> - 정가 19,000원, 구입가 11,000원(목동점 현장)

: 처음 가보는 곳에서 들고 읽다 충동구매했다. 그리스, 게르만/켈트, 서남아시아, 중국, 일본 뿐 아니라 슬라브, 몽골, 아프리카 등 다루는 범위가 넓어 급하게 알아야 할 때 해당 부분을 찾아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은 반면, 크고 무거워 아무데나 들고 다니며 읽기는 힘들다. 

<전쟁의 발견(이희진)> - 정가 12,000원, 구입가 5,600원(알라딘직배)

: 회사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책으로, 보이는 김에 샀다. 표현이 가벼워 이제 보면 깨는 면이 없잖아 있으나, 내용은 지금도 두고 읽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 올해의 최고 프리미엄

<프리즘오브 특별호: 이터널선샤인> - 정가 15,000원, 구입가 44,000원(개인)

: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하지만 2022년에는 영화관에서 세 번 본 영화가 두 편이나 개봉했어요. 하나는 (자랑스럽게) <탑건: 매버릭>이고 하나는 (마찬가지로 자랑스럽게) <헤어질 결심>이에요. <블레이드 러너>, <스페이스 오디세이>, 최근에는 <듄 1편>도 재개봉 맞춰 숙제하듯 봤고, (더더욱 자랑스럽게) <고질라> 시리즈는 짧은 개봉 시기를 맞춰 꼭 용아맥에서 봅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영화관에서 못 본 게 한이라 재개봉하면 열일 제쳐두고 보러 가려고요. 하지만 영화는 별로 안 좋아해요." 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헤어질 결심>의 관련 자료라면 각본집, 스토리보드북, 포토북에다 'Little White Lies' 특집까지 사뒀다가 '프리즘오브'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고, '이터널 선샤인' 특집호가 고대에 출간되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엄청난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구매는 사실상 시간문제였다. 그리고는 '절판되기 전에 사면 싸다!'며 이런저런 좋아하는 영화 특집호도 사려다 정신을 차렸다. 1년 후면 이사 가야 해... 짐을 줄여야 해...

 

 

- 작가 : 한강

<사랑과 , 사랑을 둘러싼 것들> - 정가 12,000원, 구입가 4,600원(알라딘직배)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 정가 11,000원, 구입가 6,200원(범계점)

: <흰>을 읽은 후 한강의 책이라면 기회 되는 대로 사고 있다. 그 중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책은 각인효과인지 처음 읽은 <흰>과, 두 번째로 읽은 <희랍어 수업(디 에션셜)>이고, 사놓고 아직 다 읽지 않은 책은 <소년이 온다>, 그리고 위 두 책이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은 앞 두 책을 읽고 기대했던 바와 달랐고, <작별하지 않는다>의 주 재료는 아직까지는 논픽션으로 읽는 편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아직 <소년이 온다>에 손이 가지 않는 것일수도)

* 한강의 저자직강 아니 낭독을 들었는데, 문체와 어울리는 목소리와 어조였다.

 

 

- 방송통신대 관련 교재

<시계열 분석(김해경)> - 정가 25,000원, 구입가 38,300원(개인)

: 대학원 4학기째부터 다니기 시작한 방송통신대 전공과 관련된다. 어떤 평에 따르면 방송대 교재는 일반 교양서적과 오프라인 전공 사이 수준으로, 직장인이 상식과 교양을 높은 수준으로 쌓는 데는 더 할 나위 없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바로는, 방송대 교재만이라도 깊이 공부한다면 웬만한 현역 대학생보다도 더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갖출 수 있다고 본다. 나를 포함하여, 주도적이지 않은 대부분 인간은 방통대 교재 수준조차 온전히 습득하기 어렵고, 널리 쓰이는 전공교재의 깊은 (그리고 잡다한) 내용까지 다 배우기는 더더욱 힘들다.

  그럼에도 또한, 나처럼 아무 부담 없이 취미로 배우는 사람에게는 가끔 방통대 교재가 충분히 깊이 다뤄주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교재 말고 더 산 책이 작년에는 <회귀분석>이었고, 올해는 저 <시계열분석>이다. 2005년에 출간되었지만 서강대 도서관에서 여러 시계열 관련 책을 비교한 결과, 수준이나 서술 방식 등이 가장 적당해 보였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데이터 분석을 위한 베이지안 통계 모델링 with Stan & R> - 정가 30,000원, 구입가 18,000원(인천송도점)

: <베이지안>은 역시 방통대 베이지안을 들을 때 혹시 도움이 될까 하여 미리 사둔 책이다. 원래는 내년에 베이지안을 들으려 했지만, 이번 학기에 7과목을 들어본 결과, 취미 공부하다 공황장애를 맞지 않으려면 조금 슬로우 다운 해야겠다는 깨달을 얻고, 그동안 수리통계학을 복습해 두고 내후년에 여유있고 철저하게 공부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하다하다 이제는 2년 후에 들을 과목의, 도움이 될지 안될지 모르는 책까지 미리 사는 상황이지만 뭐 "책값이 제일 싸다"가 내 신조니까.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기도 하다. 그렇게 말하지만 이미 <흥미로운 베이지안 통계>, <베이지안 데이터 분석 바이블>, <R을 이용한 베이즈 통계 기초>까지 이미 갖춰져 있다. 역시 나는 약간의 구속 없이는 취미조차 제대로 하기 어렵고, 방송대 강의는 취미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최소한의 구속이다.

 

 

- 문학

<황무지 새로 읽기> - 정가 13,000원, 구입가 10,000원(개인), 

<T.S.엘리엇 새로 읽기> - 정가 13,000원, 구입가 17,900원(개인)

: <W.B.예이츠 시연구>는 감수성 부족한 내가 나름대로 시를 즐길 수 있는 접근 방법을 제공해 줬다. (다만 군대에서 당직 설 때 읽고 있었더니 당직병이 "오.. 그럼 이 책은 시를 막 연구하고 하는 내용인가요?" 해서, 잠시 머뭇거리다 "...어..."라고 답하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엘리엇 시도 마찬가지 접근법을 통하면 더 재미있을 듯하여 책을 찾는데, 각각 2002년, 2001년에 출판된 이 두 권보다 더 적합해 보이는 책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취미생활 진도를 생각하면, 이 책을 깊이 읽는 것은 언젠가가 될 방통대 영문학 전공 쯤이 될 것 같다.

 

 

- 수집

<요람을 흔드는 요정> - 정가 17,500원, 구입가 18,000원(개인)

<물의 유혹> - 정가 17,500원, 구입가 9,600원(일산점)

: 신촌 글벗서점에서 <용>을 산 이래, 2005년까지 번역 출간된 같은 시리즈를 사 모아온 끝에 이 두 권으로 전 10권을 모두 모으게 되었다. 모르던 이야기는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친숙한 이야기(특히 중국 등)를 영어로 쓴 원서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글을 읽을 때 어색함을 느끼다 보면, 처음 읽어본 이야기의 해상도를 다시 의심하게 된다. 그럼에도 갖춰두면 나도 가끔 읽고, 아이들도 가끔 읽을 만큼 꽤 괜찮은 시리즈다.

* 처음 사 모으기 시작할 때 이 두 권의 절판 프리미엄은 꽤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량이 없을 때도 있었고 정가의 두 배 이상이라 사지 않았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가장 비싼 <요정>조차도 최저가는 14,000원이다. 절판된 책의 공급이 원활할리 없으니 수요 감소의 결과일텐데, 책을 쓰는 사람은 계속 느는데 책을 사고 읽는 사람은 계속 줄어든다는 얘기는 헌책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인가 싶다.

 

<세계진문기담> - 정가 25,000원, 구입가 10,800원(알라딘직배)

: "굿즈를 사는 이유 : 필요해서 1%, 예뻐서 5%, 공구에 혹해서 10%, 팔길래 84%"

  Myth만 나오고 Bust(er)는 없는, 前인터넷 시대의 괴담 백과사전으로 오늘날에는 존재 가치가 없다시피 한 책이지만 싼 가격에 팔길래 기념으로 샀다.

 

<세상을 바꾼 100가지 문서> - 정가 25,000원, 구입가 15,000원(합정점 현장)

: 결론은, 고문서 비중이 큰 <불멸의 서 77>이 내 취향에 더 맞다. 처분 예정.

 

<일본인이 모르는 일본어 1> - 정가 11,800원, 구입가 6,600원(알라딘직배)

: 책장에 놓아뒀더니 큰애가 "아빠 일본어 알아? 한국어 책인줄 알았더니 일본어로만 되어 있네?" 한다. 일본어 배우는 용도로 쌓아두는 책 수십 권 중 하나란다.

 

<The Economist: Special Millennium Edition> - 구입가 $18.55(아마존 개인)

: 대학생 때 정기구독해서 직접 받았던 1999년 말 특집호인데, 누구에게 빌려줬다가 못 받았는지 (수강편람은 정말 빌려줬다가 못 받기도 했고) 보이지 않던 차에, 헌책을 구매하면서 간이 커진 김에 샀다. 정기구독씩이나 하면서 제대로 읽은 비중은 정말 손톱만하지만 당시의 열의만은 높이 산다. 열의만은.

 

<외천루(일본어판 원서)> - 구입가 $21.40(아마존 개인)

: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는 좋아하는 만화고, <천국대마경>은 3권까지 읽다 일단 중단했지만 언젠가 다시 읽을 듯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이전에 번역되었던 <외천루>는 정가 8,500원에 지금 최저 중고가가 80,000원이지만 한참 구매를 고려했을 때는 12만원 이상이었다고 기억한다. 10배는 아니다 싶어, 차라리 언어 공부 명목도 있는 원서 중고를 구했다. 사 놓고 구글 렌즈까지 써서 대충 보니, 역시 10배 까지는 아니었던 듯 싶다. 안 샀으면 계속 찜찜했을 테니 뭐 이 정도로 잘 마무리한 듯.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 정가 16,000원, 구입가 9,100원(강남점)

내가 좋아한 <혁명을 팝니다>와 저자가 같아 몇 번의 기회를 보다 샀다. '대중적이고 현실적인 것과 대비되는, "순수한 것"이 존재하고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잠재의식을 비판한다는 맥락에서 <혁명을 팝니다>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 해프닝

<간추린 가톨릭 교회사> - 정가 15,000원, 구입가 7,800원(대학로점)

: 사고 보니 같은 책을 어디선가 사서 책장에 꽂아두었다. 남는 이 책을 개인 상대로 순판매가 10,800원에 팔았으니 어쨌든 이득처럼 보이지만, 알림 떴을 때 이 책만 구입하느라 배송료 2,500원을 따로 냈기 때문에 이익은 500원으로 줄어든다.

 

 

- 웹툰, SF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3> - 정가 14,000원, 구입가 8,100원(잠실롯데월드타워점)

:  <질풍기획>이 재미있었지만 직배송이나 우주점에서 구하기는 어려워 대신 이걸로 구했다는 말을 쓰고 보니 논리적이지은 않다. 하여간, 얕게 다루는 책/만화는 모르는 분야일수록 재미있는 듯하다. 신기한 건 1,3권은 절판이면서 2권은 신간 판매중이다.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 - 정가 12,000원, 구입가 7,000원(종로점)

: 정보라 작가 책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샀다. 'UFO'는 표제작일 뿐 딱히 UFO 관련 연작집은 아니다. 

 

 

- 민족주의

<적대적 공범자들> - 정가 15,000원, 구입가 8,100원(알라딘직배)

<내셔널리즘(강상중)> - 정가 12,000원, 구입가7,000원(알라딘직배)

: 순전히 내 입장에서만 보자면 민족주의는 현황과 정당성을 알고 싶은 대상이었다가, 한참동안은 알고 싶은 욕구도 떨어질 만큼 관심에서 벗어났다가, 요즘은 정권의 방향과 내 주변 사회의 반응 사이의 엇박자로 다시 알아보고 싶은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절판된 지 오래인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를 예전에 샀었고, 그 김에 같은 저자의 책도 물량이 있는 김에 이것저것 샀고, 또 어디선가의 인용을 보고 <내셔널리즘>도 샀다.

  한편 <우리 안의 파시즘 2.0>이나 <내셔널리즘> 저자의 인터뷰 등을 보면 학문적 정합성과, 현실 적합성/설득력은 또 별개의 영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건 오강남의 <도덕경> 중 당시 사회에 대한 평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나와 생각이 달라) 공정하지도, 최소한 중립이지도 않아 보이는 그런 시론은 제외하고 순수한 학문적 접근만 포함하는 것이 나았을까? 아니면 이런 거슬림을 느끼고 한 번 더 생각할 기회를 주었기에 결과적으로는 역시 도움이 되었다고 선해해야 할까?

 

 

- 트위터에서 추천받고 충동구매

<계획된 불평등> - 정가 22,000원, 구입가 13,200원(수원시청역점)

: 별볼일 없어 보이던 산업이 유망해지면 인식과 성비가 바뀌는 현상이 있다. <걸리 드링크>(이 책은 회사 도서관에 구매신청해서 읽었다)와 유사한 맥락.

 

<그때 미국에 가지 말 걸 그랬어> - 정가 15,000원, 구입가 8,700원(영등포점 현장)

: 이민 '실패담'이라는 값진 책인데,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절판이었다. 새책 구하기 기능도 써 봤지만 실패라 결국 헌책으로 샀다. 

  하긴, 한국에서 사업하기도 어려운데 미국에서 안해본 일 하기가 어디 쉽겠는가. 유리장벽은 정말 만만치 않아 보인다.

 

<자연 모방> - 정가 16,000원, 구입가 9,300원(수원시청역점)

: 번역가 자신이 '언어학 수업 교재로도 좋다'고 추천하길래 별 생각 없이 샀다. 1년 전 더쇼룸에서 열린 <서왕모의 강림> 낭독회 때 실제로 노승영 번역가를 본 게 자랑이다.

 

<맛있는 코리아> - 정가 15,800원, 구입가 8,800원(가로수길점)

: "그래서, 이번 음식 여행에서 어디를 갈 건가요?"

  "갈 수 있다면 어디든요. 하지만 대구는 안 갈 거예요. 대구는 음식이 아주 형편없다고 들었어요."

  "난 대구에서 태어났어요."

  "미안해요.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대전 음식이 더 형편없다고 들었어요."

  "아버지가 대전 출신이에요."

  트위터에서 이런 인용을 보고도 이 책을 안 살 수는 없었다.

  사실은 한식을 먹고 싶어서 한국에 영어교사로 와, 나보다도 다양한 각지의 음식을 먹어본 영국인에게도 홍어는 통곡의 벽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식감이 안 맞아 널리 퍼지지 않을 거라던 떡도 요즘은 잘들 먹는다던데 과연 어떨까?

 

Posted by TUNC AU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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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오른쪽 두 무더기.

 

<회귀분석> - 정가 25,000원, 구입가 13,700원(우주점)

방통대 1학기에 회귀모형 과목을 공부하다, 한 부분 전개가 이해가 되지 않아 도서관에서 찾은 참고문헌이다. 각 항목 설명이 자세해서 소장하면 좋겠다 싶어 한 권을 샀고, 스캔해서 공부하려 한 권을 또 다른 우주점에서 사서 스캔만 하고 폐기했다. 그렇게까지 자료수집까지는 열심히 했는데, 통념과 달리 책을 사놓기만 한다고 좋은 기가 저절로 머리에 들어오지는 않았기에 성적은 좋지 않았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 정가 20,000원, 구입가 10,500원(알라딘직배)

할인쿠폰 문제로 직배중고 물건을 찾다가, 그 유명한 까치 출판사 물건에 유명한 책이길래 충동적으로 넣었다.

 

<문명 건설 가이드> - 정가 22,500원, 구입가 13,900원(우주점)

인류 문명을 처음부터 훑어나간다는 주제가 마음에 들어 구하게 되었다. 비슷한 책이 있었던 듯하여 예전 폴더를 뒤져보니 2013년에 <Knowledge>를 리뷰했었는데*, 그 책은 시작점이 아포칼립스이고 이 책은 타임머신이라는 점 정도가 차이이다. 전자책으로도 나와 있어 굳이 실물을 살 필요는 없지만, 혹시나 아이들이 서가에서 보고 참고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에 구입함.

* 2016년에 <지식>으로 출간, 2021년에 <사피엔스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과학 지식>으로 개정 출간되었다 한다. 

 

<데이콘 경진대회 1등 솔루션> - 정가 30,000원, 구입가 27,000원(알라딘 새책수배)

한참 논문 주제 탐색(내지 단순 걱정)할 때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하여 샀던 책이다. 뭐 결국 한 번 들춰보지도 않고 논문도 아무 관계 없는 주제로 썼다. 특이점이라면, 이미 절판인 상태에서 새책 수배 기능을 처음 써 봤다가 성공해 버림. 지금은 알라딘 직배나 우주점 중고는 없고, 개인판매자 매물이 최소 60,000원이라고 한다. 나 한정 자매품으로 <카카오 아레나 데이터 경진대회 1등 노하우>가 있다.

 

<나는 프로그래머다> - 정가 12,800원, 구입가 7,500원(개인판매)

알고리즘 공부를 하다 저자의 <누워서 읽는 알고리즘>과 <누워서 읽는 퍼즐북>을 찾고, 이 책 저 책 수집하다 여기까지 왔다. 시간이 나면 읽어야지 하고 모아둔 옛날 이야기. 이사도 가고 하려면 가능한 한 전자책으로 바꿔야겠다 = 이 책 빼고 5권을 팔아야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전자책이 있는 책은 정말 판매가가 낮구나. 그냥 실물책으로 읽어야겠다. 아.. 처음부터 좀 알아보고 전자책으로 살걸.. 전자책이라는 대안이 있는 실물책은 부동산 점유비용도 높고, 외부 독서 편의성도 낮은데.

 

<평행우주라는 미친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는가> - 정가 14,800원, 구입가 8,000원(알라딘직배)

쿠폰때문에 같이 살 책을 검색하다, 제목을 보고 안 살 수가 없었다. 언제가 되었든 읽겠다. (뜬금없는 다짐)

 

<아즈텍 제국 : 그 영광과 몰락> - 정가 7,000원, 구입가 3,900원(알라딘직배)

<잉카 : 태양신의 후예들> - 정가 6,300원, 구입가 4,400원(우주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된 <<아스테카>> 전에 어린이들을 몰고 가기 전 예습의 일환으로 + 주변 문명에 대한 확장 견지에서 같이 산 시공디스커버리총서 시리즈다. 결과적으로는 공식 유튜브에서 다같이 배운 내용이 가장 도움이 되었지만, 책에 쓴 돈에 한 점 후회도 없다.

* 특히 첫째가 전시를 재밌게 즐기는 듯하길래, <<메소포타미아 : 저 기록의 땅>>전도 같이 갈건지 물어봤다. "뭐가 나오는데?" "쐐기문자 기록판?" "음.. 그럼 난 별로." 라길래 '아.. 혹시 아스테카 전도 아빠가 좋아할 것 같아 그냥 같이 가 준건가.." 했는데, 예술의전당에서 한 <<이집트 미라전>>은 가고 싶다고 하고 또 재밌게 봤다. 세 번 다 같이 가자고 한 경우보다 마음이 놓인다. 이제 가고 싶다고 하면 정말 가고 싶은 것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왕의 목을 친 남자> - 정가 14,000원, 구입가 7,800원(우주점)

프랑스 혁명기 大(사전적 의미 그대로)망나니인 샤를 앙리 상송 평전. <이노센트>를 본 김에 원작격인 이 책을 샀다.

 

<뜨거운 지구, 역사를 뒤흔들다> - 정가 18,000원, 구입가 9,700원(우주점)

위인은 역사를 바꾸는 주체일까? 아니면 거시적 요소의 변화가 역사를 움직이는 가운데 행운 또는 불운으로 배역을 맡게 될 뿐인 종속물일까? 집단의 성쇠는 걸출한 인물의 등장 여부보다 자신 및 타 집단의 근거지 기후 변화에 따른 영향이 더 크다는 설명이 내겐 더 와닿는다. 그래서 샀는데, 논문학기라 아직 안 읽었다. 개정판도 출간됐지만 어쨌든 이걸 샀으니 이걸로 읽겠다. 그러고보면 브라이언 페이건 책도 이젠 꽤 쌓아뒀다.

 

<바이블 문화 코드> - 정가 14,000원, 구입가 7,200원(우주점)

혹시 번역을 다시 하게 되면 쓸 만한 (그리고 저렴한) 레퍼런스가 될 것 같아 쟁여두었다.

 

<세계의 모든 문양> - 정가 59,000원, 구입가 110,000원(개인판매)

예전 양양박물관에서 십자가-태양새 연결론을 보고, 또 제목은 안 적어 두었다가 결국 박물관에 문의메일까지 보내 알아낸 책이다. (감사의 뜻으로 <금융의 역사> 한 권을 보내드렸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해당 부분을 복사해두기까지 했지만, 역시 언젠가 살 책은 결국 사게 된다. 올해 구입한 헌책 중 최고가이고, 또 가장 (돈)자랑할 만한 책 두 권 중 하나다. 내용의 깊이와 범위로 생각하면 이건 번역 레퍼런스로조차 사용할 일이 없을 듯하지만.

 

<악마와 검푸른 바다 사이에서> - 정가 12,000원, 구입가 48,000원(개인판매)

이건 지난 3년간 대학원도 아니고, 20여년 전 학부때 도서관에서 재밌게 읽었던 책이다. (출간일이 2001년이니 당시만 해도 신간이었겠다) 그 후로도 가끔 생각나던 책인데, 사놓을까 할 때는 이미 절판이었고 가격도 엄청났다는 기억이 난다. 생각나는 가장 최근이 2014년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그 가격이 한 5만원 정도 했던 듯하니 이번에 산 가격이 조금 싸지기는 했어도 큰 차이가 없네. 이 역시 올해 구입한 헌책 중 가장 (돈)자랑할 만한 책 두 권 중 하나다.

 

<김경일 교수의 갑골문 이야기> - 정가 12,000원, 구입가 6,100원(우주점)

이 역시 20여년 전에 동생이 사온 신간을 읽었던 기억이 나서, 묶음배송 용으로 검색된 김에 샀다. 본가나 동생 집에도 한 권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집은 그 집, 우리 집은 우리 집.

 

<살라미스 해전> - 정가 17,800원, 구입가 8,000원(알라딘직배)

쿠폰 사용용으로 검색하다 찾은 책. 저자 책 중 <트로이 전쟁>을 가지고 있고, <스파르타쿠스 전쟁>은 도서관에서 빌려 어느 일요일 저녁에 카페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올해 산 책 가운데 논문 수정 마치고 제일 처음 집은 책이다.

 

<고고관> - 정가 12,000원, 구입가 6,900원(알라딘직배)

경주박물관 고고館 소장품 도록. 고고관이란 지금 신라역사관인 듯 하다. 인터넷으로 확인한 표지에 천마총 금관, 관식을 보고 '고고冠'이라고 생각하고 샀는데, 조금만 생각해 봤으면 그럴 리 없다고 깨달았겠지만 뭐 상관없다. 

이 책은 노승영 번역가의 낭독회에 참석하려고 예습용으로 급히 <서왕모의 강림>을 사는 김에 쿠폰 사용용으로 샀다는 의의가 있다. 그 이벤트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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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안그래도 회사 일이 바쁘게 돌아갔던데다, 상반기부터 이중학적에 하반기 졸업논문까지 정신없어 헌책 구입은 별로 없었던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독서가가 아니라 적서가라는 타이틀에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 욕심내지 말고 나눠 써야겠다.

 

구입 당시 절판본이었던 책만

<사금일기> - 정가 9,000원, 구입가 5,100원(알라딘직배)

작가가 그 후로 어떤 길을 갔든, <도자기>는 서가에 둘 만한 도예 감상 입문서다. <사금일기>는 알라딘 쿠폰 사용 조건때문에 묶음배송에 적당한 직배중고를 찾다가 얻어걸린 행운이다.

 

<알코올병동(실종일기2)> - 정가 15,000원, 구입가 7,000원(우주점, 현재 개인판매 21,000원 이상)

<실종일기>를 2013년에 샀고, 올해는 마사토끼에게 낚여 후속작도 샀다. 작가의 사고방식과 그림체 덕분에 그래 보이지 않지만, 잘 생각해보면 끔찍한 이야기의 연속이다.

 

<문로스트 1, 2> - 정가 18,000원, 구입가 15,000원(개인판매)

<2001 SPACE FANTASIA>, <멸망한 짐승들의 바다> 같은 호시노 유키노부의 작품을 좋아한다.

 

<대리전> - 정가 9,800원, 구입가 5,200원(우주점)

내게 듀나 작품은 김보영에 비해 조금 어렵다. 이야기 안의 도구와 목적이 차지하는 비중 가운데 도구 쪽이 조금 더 높은 반면 설명은 친절하지 않아서 (물론 세계관 내에서 세계관 설명을 하지 않는 것이 이야기 안에서는 자연스럽다) 그런 듯하다. 최근에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를 잘 읽고 나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마음의 지배자> - 정가 14,800원, 구입가 8,300원(알라딘직배)

원사운드가 그린 "묘생만경"을 보았다. 이 책 이후로 작가의 신간은 검색되지 않는다.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 정가 12,000원, 구입가 22,000원(개인판매)

같은 작가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대충 읽고 내친 김에 산 일종의 시리즈다.

 

<Lolita> - 정가 12,350원, 구입가 11,000원(개인판매)

대역본은 아니고, 영어 원문에 한국어 각주가 달린 책이다. 위 책과 묶음배송으로 샀다. 영어(+여력이 된다면 일어, 중국어도) 원작은 웬만하면 언젠가 원문으로 읽어보는 예비 취미와 관련한 수집의 일환으로 대역본을 쌓아두는데, 적당한 대역본이 없으면 이 정도도 도움이 될 듯해서. 신아사에서 나온 시리즈로, <1984>, <Greate Expectations>, <Oldman and the Sea>, <Animal Farm>, <Great Gatsby>도 같이 쌓아두었다.

 

<나이 들어 외국어라니> - 정가 14,000원, 구입가 7,000원(알라딘직배)

회사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책인데, 내 지향점 또는 타산지석이라는 기념비로서 수집했다고 말해본다. 요약하면, 미국 남성이 노구에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가 심장질환까지 얻으며 실패했지만 인지력 향상 등 얻은 건 있더라 정도.

 

<군사학 논고> - 정가 9,500원, 구입가 4,900원(우주점)

우주점 묶음배송 건을 찾다가 고전이라 샀다는 정도. <손자병법>이 지금도 인기있는 고전인 데는, 수많은 관심이 지금까지 이어지며 좋게 말해 재해석과 나쁘게 말해 견강부회가 계속되며 이름값이 유지되는 선순환-악순환이 지속되기 때문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다. 적어도 한국어로는 그런 흐름이 없이 원전만 비교적 최근에야 번역되어 나온 이 책이 군사사 연구자 아닌 사람에게도 수집 이상의 의미가 있을지.

 

<구도자의 나라> - 정가 8,500원, 구입가 4,300원(우주점)

<예언자의 나라> - 정가 8,500원, 구입가 4,200원(개인판매)

예전에 샀던 <군자의 나라>를 몇 장 들춰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지뢰찾기조차 재미있어지는 바쁠 때 특유의 시리즈 수집 취미욕 발동으로 충동구매 한 것 같다. 아무 의미 없는 것은 아니고, 종교를 믿을 생각은 없어도 종교사에는 관심이 있지만 정말 관심만 있을 뿐 뭔가 체계적으로 시작하지는 않은 상태에서 6대 종교의 개론을 간단히 훑고 넘어가기에는 분량도 내용도 괜찮은 듯하다. 바꿔 말하면 그 정도 지식도 없지만 관심은 많다. 다른 잠재 관심사가 그렇듯.

 

<플라톤 :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향연> - 정가 26,000원, 구입가 23,400원(알라딘직배)

나는 중역본보다 원전번역본을 우선하는데, 그러다보면 그리스/로마어 원전은 대체로 천병희 번역본이 우선이기 쉽다. 당장 읽을 것이 아니라도 물건 알림은 등록해 두고, 올라올 때마다 구입해 왔다. 번역자는 3일 전에 별세하셨다고 한다.

 

추가 - <플라톤 : 국가> - 정가 35,000원, 구입가 20,800원(우주점)

직배 물건을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는데, 번역가 별세 소식이 뉴스에 나온 김에 다시 확인했다가 직배 물건이 판매된 것을 보고 하나 남은 우주점 물건을 바로 구입했다.

 

<전문가와 강적들> - 정가 18,000원, 구입가 9,500원(우주점)

"...그 분야의 책을 한 달에 한 권씩 읽는다면 결국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아니다.

종이책은 절판됐지만 전자책은 판매중인데, 그래도 서가에 있고 없고는 서점에서 매대에 깔렸냐 서가에 꽂혔냐 정도의 차이가 있으므로 수집했다. 아직 몇 부분 들춰본 정도인데, 풍부한 사례를 추가하여 개정판을 낼 만한 소재와 의의가 충분하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듯,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은 이 책을 읽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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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알라딘

독서 2021. 12. 4. 13:08

https://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226230&custno=6000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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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라, 기억이여> 12/1 구입가 20,600원 / 정가 16,000원

나보코프의 유명한 소설 두 편을 대충 읽어보았다. 다른 책보다 문학을 특별히 사랑하지 않는 내가 한 권 내내 특별한 재미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롤리타>의 그 유명한 도입부가 그랬듯,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던 이 책의 본문의 첫 세 줄은 읽은 순간부터 계속 마음에 남았다. 이 정도면 가격도 괜찮지 않나 하여, 다시 한 번 읽어볼 요량으로 샀다.

 

<Constructing "Korean" Origins> 11/14 구입가 37,500원

배형일은 미국에서 활동하다 2018년에 세상을 떠난 역사학자다. '한국사'의 시작은 청동기 유물에 근거하여 '반만년'으로 추정하지만, 문헌으로 따지면 기원전 1세기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가기 어렵다. 누군가는 상상력의 부족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무리할 필요 없는 것을 무리하게까지 상상할 필요도 없다. 문학은 문학이고 역사학은 역사학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가, 찬찬히 읽고 싶어 샀다.

- 사고 나서 발견했는데, 저자의 초판 사인본이다. 사인 내용으로 보면 2000년 말일에 친척 또는 지인에게 선물했던 듯하다. 학문적 견해가 맞지 않았던가(진지) 좁은 집으로 이사했거나 급전이 필요했을 것이다(추정).

 

<제국의 위안부(초판)> 11/7 구입가 40,000원 / 원가 18,000원

약간만 손품을 팔면 개정판에서 복자 처리된 내용을 알 수 있다. 구입은 약간의 수집벽 때문이기도 하고, 한 달에 4만원까지 나오는 알라딘 신한카드 할인 예산을 채우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대영박물관이 만든 이집트 상형문자 읽는 법> 11/7 구입가 23,000원 / 정가 12,000원

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층은 중국 고대 청동기전을 혼자 보러 간 때 두 번, 그리고 가족과 한 번 방문했다. 첫째가 일기에 상형문자로 자기 이름을 쓰겠다고 하여 위키피디아에서 찾아주었다. 그러고 나니,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역사책 번역 일을 또 받았을 때 이집트어 레퍼런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망상 하나, 유사 주제 책이 절판되었기 때문에 다시 발동한 약간의 수집벽 하나, 그리고 위 <제국의 위안부> 판매자가 다른 헌책방에 비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올려놓았다는 이유 하나로 같이 샀다. 

- 알라딘에서 상형문자 읽는 법을 다룬 성인 대상 교양서는 2005년에 세 권이 한 번에 번역출판되었다가 현재 모두 절판 상태다. 2005년에 뭔가 이집트 붐이 불었던 듯하다.

- 3층에서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도 전시중이다. 이집트 문자 유물은 전혀 읽을 수 없는 (그리고 알고보면 형이상학적으로 시시콜콜한) 반면, 이쪽 유물은 대충 읽는 척이 가능(그리고 읽고 보면 형이하학적으로 시시콜콜)해서 못지 않은 재미가 있다. 도록이 있으면 사려 했는데.

 

<22세기 사어 수집가> 10/1 구입가 9,300원 / 정가 16,000원

동네 도서관에서 서가를 돌아다니다 충동적으로 뽑아 넘겨보았다. 맨 앞 작가의 촌철살인을 보고 빌려왔는데, 다른 작가의 톤과는 또 다르다. 심각하려다 보면 심각해지기만 하는데, 가벼우려다 보면 깊이도 갖출 때가 이런 글에는 있다. 유어마인드에서 나온 책이라 호기심이 더해져 우주점 매물 알림을 걸어두었다가 싼 가격에 샀는데, 이제 남은 매물에는 할증이 붙었다.

 

<가다라의 돼지> 10/1 정가 19,800원 / 정가 19,800원

<인체 모형의 밤> 10/1 구입가 5,300원 /  정가 10,000원

- 모르던 작가의 (긍정적 의미에서) 탈선 인생을 듣고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본 첫 책이 <가다라의 돼지>다. 오컬트와 MythBuster를 같이 좋아하다 보니 저녁에 한 번 잡았다가 바로 완독했다. 결말 부분은 서브컬처 클리셰라 오히려 흥이 식었지만, 읽는 동안에는 분명 즐거웠다.

- <인체 모형의 밤>은 대여책 집중 서가에서 숙성되던 중, 요즘 괴담 좋아하는 첫째가 먼저 꺼내 읽고 '재밌더라'는 감상을 전했다. 생애주기적으로 정당한 검열에 실패한 것 아닌가 하고 경악하며 재빨리 읽었다. 최소한 표현/묘사상으로는 괜찮지 않았나 하고 안도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대충 넘겨보니 셋 중 한 쪽에서는, 그때 내 기준이 좀 관대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뭐 그때 맞는 것만 읽어서야 성장이 있겠는가(자포자기). <22세기 사어 수집가>까지 하루에 구매한 것은, 알라딘 신한카드 할인한도가 다시 생기는 월초에 그 우주점에서 같이 팔았기 때문이다 - 조지 맬러리.

 

<손자병법(올제클래식스판)> 아마도 여름, 구입가 5,000원 / 정가 2,900원

지금은 가지 않는 1층 미용실에서 둘째가 아내의 감독 하에 머리를 깎고 있을 때 첫째에게 아무 책이나 사줄까 하여 내려갔다가 나만 한 권을 골라왔다. 그러나 정식으로 판매되지도 않았던 특별본에, 희귀본이라 정가보다 두 배 가까운 가격인데도 여전히 저렴한 가격인데다, 내가 좋아하는 저자의 번역본이기도 하고, '그 서울시 문화유산'인 공씨책방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구매 정당성을 내세워 본다. 

- 손자병법은 김원중, 유동환 번역본으로 먼저 대충 읽어보았다. 앞서 읽은 두 판본이 원전 해석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 책은 원문과 번역을 토대로'만' 한 기출변형 해설서다. 재미있고 속시원하다. 한편, 앞으로도 계속 손이 가는 것은 함축된 원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해석은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했느냐로 바뀌니까.

- 있었는데 안보이는 정비석 소설 손자병법 4권(고려원판)은 논외로 한다.

 

<현대 미시선(영한대역)> 9/17 구입가 1,800원 / 정가 2,000원

우연히 얻은 현대 영시선 수록 시 중 특히 Marina가 (분량까지) 마음에 들었다. 외국어 시집은 원서도 (어렵고) 번역본도 (원문이 안보이니) 불만이라, 감히 번역의 품질을 논하지 못하는 나는 대역본이 적당하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일종의 시리즈로서, 회사 근처 매장에서 재고를 확인하고 점심에 갔다가, 생각보다도 엄청나게 열악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나혼자) 시리즈를 채운다는 마음으로 샀다. 오랜 기간 한두 쪽씩 떠들어 보다 보면 때에 따라 마음에 또 박히는 시가 있지 않을까.

 

<불멸의 이론> 9/1 구입가 43,500원 / 정가 28,000원

1년 전 대학원 첫 학기에 들었던 소셜네트워크 이론과 응용 과목은 베이즈 확률론과 미분방정식과 선형대수학의 재미를 일깨워 준 것만으로도 큰 이득이 되었다. 저 셋은 학부 때 배웠다는 사실만 기억나거나(선형대수학) 집에 아직 있는 교재를 들춰보니 떡하니 있었다거나(미분방정식 - 정말 부끄럽다) 아마도 배웠을 것이라는 심증이 있는(베이즈) 과목이란 사실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본 이 책의 재미와 정보는 베이즈 확률론 책 가운데서뿐 아니라 과학교양서 전체에서도 최고의 몇 권에 꼽힌다. 내가 읽어 본 극소수 샘플을 기준으로 한다는 사실은 생략하자. 그러나 아무리 몸에 단 책이라도 눈에 쓰면 어찌 읽을 수 있겠는가... 아직 출판되는 원서를 사면 분명 안 읽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고가로 샀다.

- 한 문장을 몇 번이라도 읽어 이해하며 얻는 성취감은 분명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서 하더라도 의무가 있는 '반'취미와, 다른 놀이와 경쟁해야 하는 '온'취미로서의 원서 독서는 분명 성공률이 천지차이다. 파트타임 취미 번역가인 나는 이렇다.

- 지금 보니 최저가가 4만원으로 내려왔다. 배는 아프지만 살 사람은 살아야지.. 아 아니 사야지.

 

<트로이, 잊혀진 신화> 8/10 구입가 12,200원 / 정가 23,000원

바다 민족을 알게 되면서 서서히 지갑을 잠식한 트로이 신화/역사에 대한 관심은 급기야 매장에서 제목과 몇 페이지만 보고 구매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트로이 전쟁(배리 스트라우스)>에 비견할 만한 책인지는, 아직도 안 읽어서 모르겠다.

- 배리 스트라우스의 <스파르타쿠스 전쟁>은 재밌을 거라 생각해서 동네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저자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료/고고학적 증거 부족 문제때문에 예상보다 밋밋해 아쉬웠다. <트로이 전쟁>도 그렇지 않나 하면, 그쪽은 증거만으로도 상상(문학)과 현실(역사)의 괴리가 꽤 커서 '알고 보면 깨는' 맛이 만만치 않다. 브래드 피트의 아킬레우스를 보다가 오스프리에서 나온 청동기 전사의 갑옷을 볼 때의 '깨달음'이랄까.

- 이 주제와 연관된 가운데 제일 처음으로 산 책은 <The End of the Bronze Age>로 아마존에서 주문했었고, 가장 멀리서 산 책은 시카고 헌책방에서 구한 <Before the Greeks>다. 그러고보면 지갑 뿐 아니라 귀한 시간까지 잠식당했던 것. 특히 가족을 동반한 여행에서 헌책방은 가지 말자.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8/8 구입가 57,500원 / 정가 32,000원

<플라밍고의 미소> 8/1 구입가 25,000원 / 정가 28,000원

<여덟 마리 새끼 돼지> 8/1 구입가 30,000원 / 정가 28,000원

<풀하우스>는 재미있게 읽은 책을 하나 대 보라고 할 때를 대비하여 마음에 품고 있는 책이다. 야구와 자기 투병 이야기와 '뭔가' 더 하나까지 세 주제를 한 키워드로 집요하게 묶어냈다고 느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것 같았던 그 '뭔가'가 기억이 안 나서 책을 다시 들춰봐야 했을 정도면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

<브론토사우루스>는 그 시카고 헌책방에서 너덜너덜한 페이퍼백으로 사서 점심시간에 가끔 읽었다. 8월 알라딘 신한카드의 예산을 뭘로 채우지 고민하다 충동구매 리스트에 넣었고, 나머지 두 권은 시리즈 온갖춤의 충동 때문에 샀다. 놀랍게도, 시리즈로 출간된 세 권의 번역가가 모두 다르다. 덕분에 내게 잘 읽히는 권도, 진도가 잘 안 나가는 권도 있다.

 

<5천년 전의 일상> 8/1 구입가 18,000원 / 정가 13,000원

금융의 역사를 번역할 때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참고했던 책이다. 재미만으로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집트 상형문자 책과 마찬가지로 언젠가 또 레퍼런스가 되어 줄 것이다.(확신)

 

<오늘 밤 모든 바에서>8/1 구입가 4,300원 / 정가 10,000원

나카지마 라모 책 중에서 이 책이 구하기 제일 쉬웠던 듯, 구입일이 제일 빠르다. 내가 가진 다른 두 권과 작가가 같다고는 생각하기 어렵기도(주제), 그럴법하기도(문체) 하다.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3/5 구입가 20,000원 / 정가  22,000원

역시 사는 김에 몰아 사는 같은 저자 책 시리즈. 이리하여 공역을 제외한 저서 모두를 모았다. 도상학 입문서로 <춤추는 죽음>밖에 읽어보지 않았는데, 과연 찾아보면 좋은 책이 많다. 

- <동물, 괴물지, 엠블럼>은 문외한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책인데, 그 난해함 자체가 매력이기도 하다. 거울 딕툼 말고는 머리에 남아 있는 내용도 없지만, 한 권을 통으로 버린다 해도 한 문장을 건진다면 어찌 이익이 아니겠는가!(아님)

 

<수신기(중한대역)> 3/5 구입가 25,000원 / 정가 36,000원

이놈의 원서 대역본 지상주의... 그러나 정가보다 싸게 샀으니 후회는 하지 않는다.

- 2019년에는 요재지이 완역본을 몇 주에 걸쳐 여섯 권 모두 짝 맞춰 샀다. 역시 시리즈 강박관념이다. 아이들을 재우면서 요재지이 한두 편씩을 읽어 줘 봤는데, 나도 모르는 이야기를 읽어나가다가 깜짝 놀라 '앗 다른 이야기를 읽어야겠네' 하고 넘어가거나, (손만 잡고 잤다던지 하는 식으로) 최대한 순화해서 읽어 준 경우가 반도 넘을 것이다. 어쨌든 아이들은 재밌어했다.

- 수신기는 요재지이의 대체본으로 사서 읽어줘 봤는데, 서사보다는 소재에 초점이 맞춰진 탓인지 집중도가 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조금이라도 늦게 자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왜곡된 욕망에 부응하지 못하는 길이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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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이라고 하니 언젠가는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일단 분량 때문에 손에 잡기 힘들고, 굳게 마음먹고 책을 펼쳐도 도무지 진척되지 않는 줄거리에 러시아 고유명사의 향연에 결국 몇 번이나 덮게 되는 고전. 그러다 큰 병에라도 걸려 몇 주 몇 달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을 때, 사 놓거나 읽어 볼 만하다는 책은 이미 다 읽어버려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을 때에야 손을 뻗게 된다는 악몽같은 책.

 

이상은 벌써 20년도 넘은 입시생 때 학원 강사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묘사한 대목이다. (정작 그 과목이 국어나 문학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얼마나 인상이 깊었으면 강의와 아무런 맥락도 없이 나왔을 말이 세월을 이겨내고 강사의 표정과 함께 떠오를 정도다.

 

그리고 오늘 나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끝까지 읽었다. 본작이 아니라, 존 르카레의 <Honourable Schoolboy>를.

 

반 년 전 여행 때 <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를 읽고, 조금 뒤에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보고 나서 나는 <TTSS> 캐스팅을 유지한 후속작으로 <Smiley's People>이 나올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극장에서 보겠다는 목표 1, 영화가 나오기 전에 원작을 읽겠다는 목표 2, 그리고 <The Call from the Dead>부터 <SP>까지 스마일리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겠다는 목표 3을 (그리고 읽어야 하는 책이라면 번역본으로, 영문판이 원서고 재미 때문에 읽는다면 원서로 읽는다는 원칙 상 모두 원서로 읽겠다는 기본 목표0까지) 충족하기 위해, 한 권만 배송해도 전 세계 무료인 Bookdepository (왜 갑자기 광고비도 안 받는 광고 분위기..)에서 다섯 권을 한 번에 주문했다. (<The Looking Glass War>는 일단 영화와 관계 없을테니 제외했다) 

 

첩보소설을 기대했더니 추리소설에 가까웠던 앞 두 권, 내용과 암시는 어찌됐든 앉아있으면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나는 영화는 책과 다르다는 깨달음을 준 <TTSS>. 그리고 <HS>는 옛날 BBC 드라마로도, 이번 영화로도 영상화를 검토만 하다 결국 건너뛰기로 했다는 책이다. 하지만 시리즈에서 그렇게 건너 뛰는 책이 있다면, 후속작에서 어느 정도 이야기를 다루지 않을까, 그렇다면 읽어야 영화도 여러 내용을 빠짐없이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SP>를 보기 전에 <HS>를 먼저 보기로 했다.

 

일단 분량이 압도한다. 팸플릿 같던 첫 두 권, 분량으로 여전히 부담 없어 보이던 <추운 스파이>를 쓸 때까지 저자는 작가를 취미로 하던 양반이었는데, 세 번째 작품이 대성공하면서 회사를 때려치고 전업 작가가 되는 한편, 가용 시간이 급증함에 따라 작품 분량도 급증하였다 한다. 그래도 <LGW>는 288페이지까지만 늘어났지만, 급기야 <TTSS>는 416페이지로... 한국어책도 400페이지 넘어가면 분량 부담이 없다고 하기 힘든데, <TTSS>는 냉전의 음울함과 첩보전의 신경쇠약을 문체와 내용 뿐 아니라 분량에서부터 구현했다고 할 만하다.

 

그리고 <HS>는 688페이지 짜리다.

 

이 책을 처음 펴고 다 읽는 데 다섯 달이 걸렸다. 물론 5개월 동안 이 책만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니, 그랬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대단한 일이지만.) 첫 두세 챕터 읽다 던져두고, 다시 1장부터 읽고 하기를 세 번은 했다. 한 100페이지 넘어가니 그 동안 읽은 노력이 아까워 '정석 공부할 때마다 행렬만 열심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이를 악물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여름 여행 때는 10시쯤부터 가족이 자느라 호텔 방 불을 끄면 로비로 내려와 한두 장씩 읽어냈고 (그 동안 책 보다가 조는 아름답지 못한 장면도 연출했다. 방에서 잠이나 자지 왜 1시간 넘게 로비 소파에 앉아 책 읽는 척 하며 불편하게 하는지 귀찮아하셨을 직원분들 죄송) 400페이지 넘어가면서는 첫째 눈높이 풀듯 자기 전에 한 챕터 씩 풀..아니 읽다가, 오늘은 아예 이놈의 책 끝을 내겠다는 마음으로 말복 한낮에 감히 집 밖으로 나와 카페에 죽치고 앉았다.

 

나중에 어떻게 평가받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최소한 지금 이 책이 <형제들>처럼 고전으로 널리 인정받은 것도 아니고, <TTSS>나 <SP>처럼 영화화된 유명한 소설도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렇게 기록을 남겨놓는 것은 누가 안 시켰는데 거의 700페이지짜리 원서를 읽어 낸 자랑스러움에서다. (번역가는 원서 읽기가 더 편하지 않나요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내 경우에는 '오히려 그렇지 못해서' 내지 '이해 못하는 데 약이 올라서' 번역을 시작한 데 가깝다. 그리고 안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대부분은 나와 비슷하거나, 최소한 '영어 책 당연히 읽기 어렵지'인 듯)

 

그런데 신기한 것이, 더 짧은 <TTSS>는 당분간 다시 읽을 마음이 없는데 <HS>는 '언제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라는 대체재가 있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TTSS>의 칙칙하고 끈적한 분위기는 영화를 보나 책을 보나 어느 정도 비슷했으니 빨리감기의 도움을 받아 영화를 보는 편이 간편하고 시간도 절약된다. 반면 <HS>는 다른 방법이 없다. 또 영화를 비롯해 다른 정보원천이 있는 <TTSS>와 달리, <HS>는 덜 유명한 탓에 이 외에 내용을 알 방법이 없다. 여지껏 여러 내용에서 암시했듯, 이번 독서의 목표는 완독이지 정독이 아니다보니 안구만 움직이고 뇌는 움직이지 않은 부분이 반 이상일지도 모른다. (좀 심해 보이지만, 잠재의식에는 남아 있을 거라고 위안한다) 기본 줄거리 말고는 내용을 반이나 이해했을까? 그러다보니 추억보정으로 '돌이켜보니 재미있는 것 같았어'하는 생각이 벌써 들어 한편으로 소름끼친다.

 

그리고 다음 작인 <SP>는 다시 간소하게(?) 432페이지로 줄어든다. 열탕에서 온탕 갈때와 냉탕에서 온탕 갈때 다르듯, 책이 얇아보이기까지 한다. 심지어 <HS> 다 읽은 오늘 슬쩍 집어들고 한 페이지 읽기까지 했다. 바로 덮었지만.. 뜬금없는 마무리지만, 르카레 선생께서 이제껏 부업 작가로 남았다면 지구의 나무는 살리고 독자의 시간은 절약하며 이야기의 밀도는 높아지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 않았을까 한다. (킴 필비 개자식.. 공산주의 정보기관의 진정한 해악) 물론 공평하게 말하자면 내용이 아니라 문체와 분위기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고, 지금 나온 스마일리 시리즈나 다 완결되었을지조차 의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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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정치적 결정이지만 자동차를 소유하겠다는 결정은 (정치적 결정이) 아닌 것처럼."


'The Unexpected Tales'나 '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는 내게 'page (fast) turner'였다. 그만큼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다. 정 반대로, 'page (slow) turner'도 재미있게 읽었다는 표현이 된 사례가 이 책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모두 명문'이라고 한다면 그건 물론 과장이겠지만, 방심하고 읽다 보면 한두 페이지마다 한 번씩은 표현으로든 내용으로든 전개 방식으로든 (진부한 표현이지만, 진부한 표현 그대로) 뒤통수를 맞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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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준비를 하던 시절, 강사가 학원 수업 시간에 이런 얘기를 했다. “왜, 독서실에서 공부 하다 보면 ‘어이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하는 때가 있지 않니? 빈도로 따지자면... 일년에 한 번 정도?”

외서도 그렇다. 한국어 책이라면, 설령 학술서라도 관심있는 주제를 명확히 다뤘을 경우 초반 적응기만 잘 버티면 페이지가 잘 넘어간다. 반면 어쩔 수 없는 단일 모국어 구사자인 내게 외서 독서는 일종의 ‘업적’이자 고행이라는 요소가 분명히 있다. 마치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처럼 읽은 분량과 남은 분량을 끊임없이 의식해 가며, ‘괴롭지만 어쨌든 포기하기 전에 한 발 더 딛어 보는’ 마음가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예외라고 하면 (만으로) 38년 평생 두 권이나 있었을까. 군 시절 영어공부나 할까 하고 사서 당직을 서던 날 저녁에 펼쳤다가 단숨에 읽었던 <Angels & Demons>(그렇다, 댄 브라운 소설이다)가 그랬고, 대학 영어수업 교재에 실린 단편이 흥미로워 회계법인 시절 샀던 로알드 달의 <Tales of the Unexpected>가 그랬다. 특히 <Tales>는 읽으면 읽을수록 남은 페이지가 줄어들어 안타깝기까지 한 신비체험을 할 정도였고.

그리고 요즘 세 번째 예외를 만났다. 지난 연말 해외여행에 가져가려고 샀다가, 감기가 드는 바람에 가족들이 수영하는 동안 풀사이드에 누워 읽기 시작한 책이 존 르카레의 <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다. 적도 근처 리조트에서 냉전기 첩보소설을 읽고 있으려니 분위기도 맞지 않고 (그러고 보면 같은 장소에서 바로 앞에 읽은 책은 한강의 <흰>이다. 장소가 안 어울리기로는 <Spy>보다 더하고, 흥미롭기는 못지 않았다) 감정이입도 잘 안 되어, ‘세 시간 동안 먼 산 아니 먼 바다 바라보기보단 낫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리고 중반을 넘어갈 무렵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는데, 돌아오는 내내 페이퍼백에 몸을 기울이고 독서를 끝냈다. 혹시 다 읽기 전에 도착하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과정, 반전, 결말에 현실 비판 모두 업계 경험자이기에 설득력을 더할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르카레 옹의 작품은 첫 작품부터 다 읽을 생각으로 2주 전에 bookdepository에서 일단 세 권을 주문했다. 그리고 <Tinker Tailor Soldier Spy> 영화를 올해 안에 봐야겠다. 후속작이 개봉하기 전에 원작을 (출간 순서에 맞춰) 읽고 영화관에서 보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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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에이스 하이>가 보여 준 미친 감각을 계승한 작품은 <익명의 독서중독자>다. <빅토리아처럼 감아차라>는 개그만화로서 만족스럽지만, 현학과 개그를 뒤섞었던 두 편과 비교하면 현학이 빠져 있어 계보에서 벗어난 이질적 작품이다.


<에이스 하이>가 그랬듯 <익명> 역시 종결될 때까지 존재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한 번에 몰아보게 되었다. 책을 소재로 했다는 데서 이미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웹툰이었고, 또 만족스러웠다. 후반의 노선 급변은 아마 연재처가 웹툰 수요 대세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고 조기 중단을 요구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글쎄다, 재고부담과 지면 한정, 현금회수가 중요 이슈일 오프라인 인쇄물이 아니라 온라인 포탈이, 인기에 따라 냉정하고 잔혹하게 연재작을 쳐내는 오프라인 만화잡지를 흉내내야 하는 것인가.


(물론 무한정 연재작을 늘리는 것은 개별 웹툰 주목도 하락에 더해 부차적으로는 서버, 트래픽 관리 문제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무작정 롱/팻테일이 아니라 다수 독자를 끌 유명 인기작 + 소수 열광층을 장기로 잡아둘 컬트작 조합으로 큐레이션하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두 작가가 차기작에 착수하려고 의도대로 마무리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다른 문제가 된다.)


매번 다르면서도 (내가 들어도) 합당한 이유로 쫓겨나는 노마드, 필요할 때마다 사대느라 제각각 다른 사자네 책장에 감동하는 회원들의 모습, 까치출판사 표지 디스 등 공감해서 폭소한 포인트도 많이 있다. 또 D. H. 로렌스의 셰익스피어 시 한 구절, 여기저기서 언급된 여러 책 같이 자극을 새로 받을 만한 부분도 있었다. 


물론 등장한 책은 결국 작가가 읽었거나 읽고 있거나 읽으면 좋다고 들었을 책일 뿐이다. '명문대 추천도서'에 든 책은 다 명작이고 고전으로 분류될 자격과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부모님께서 통 크게 사주신 그 추천도서 수십 권 중 지금까지도 읽지 않은 책이 절반을 넘는다. 가벼운 책이라면 몰라도 (그 중 대부분일) 무거운 책을 자발적으로 읽으려면 둘 중 하나는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병에 걸려 장기 입원을 하느라 가벼운 책을 모두 읽어버렸거나, 살면서 어떤 계기로 해당 도서의 주제에 관심이 생기거나. 다행히 장기 입원을 하지 않은 나는 콜린 윌슨의 <Outsider>는 영국 인터넷 고서점에서 원서를 사서 읽었지만, 부모님께서 20년 전에 사 주신 케네스 클라크의 <藝術과 文明>은 아직도 펼쳐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 같이 받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몇 년 전부터 읽고 싶어졌지만, 그 동안 활자가 깨끗한 새 번역판이 나와 버린 바람에 가지고 있는 책을 읽느냐, 아니면 과감히 손절하고 새 책을 사느냐를 가지고 몇 년 동안 고민만 하고 있다.


한편, 그나마 돈도 받으니 번역가가 아니라고는 못 할 처지에서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 하나 있다. (사실 이 부분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다.) "'저자 소개'보다 '역자 소개'가 긴 책은 재고의 여지 없이 무시한다"는 '팁'이다. 출판사와 역자의 태도가 그래서야 양서가 나올 리 없다는 이유도 붙여서. 언뜻 들어선 그럴 듯하다. 어쨌든 원서는 원저자가 쓴 것이고, 번역가는 원문을 번역한 것일 뿐이니 번역가가 원저자보다 앞에 나와서는 (내가 해석하기에는) 창조자인 원저자를 무시하고 단순 기술자인 번역가를 그 앞에 두는 건방진 행위라는 얘기니까. 그래서는 번역 과정에서 원문을 무시한 월권이 나오고, 결국 오역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논증 없는 감정적 선동과 선언을 지나치고 생각해 보자. 


우선 경력에 따라 소개의 길이가 정해진다고 가정한다면, 원저자 소개가 번역가 소개보다 길기 위해서는 원저자의 경력이 번역가의 경력보다 길어야 한다. 같은 회차의 '안정감 주는 저자 소개' 방식에 따르면 결국 저자의 소개문 길이는 저서와 관련 경력에 따라 결정될 것이고, 역자 소개문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보아 저자는 저술 경험이 많아야 하고, 역자는 그보다 적어야 한다. 반대로, 번역할 가치가 충분하더라도 그 책이 저자의 첫 저서인 한편, 역자는 번역서를 다수 출간하여 (최소한 경력으로만 판단하면) 능숙한 기술자인 번역서라면 '재고의 여지 없이 무시'해야 한다. 바람직한 판단 기준인가?


둘째, 위 경우에서 이어 생각하여, 그렇다면 번역자의 번역 경력은 축소하고, 관련 학력 및 직무 경력도 최소화하여 원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면 어떨까? 내 생각에, 원서가 번역되는 순간 원저자의 기여는 반 이하로 줄어든다. 번역문 독자에게 전달되는 나머지 내용 반 이상은 번역가가, 또 편집자에게 달려 있다. (그래서 번역가와 편집자의 어깨가 무거운 것이고, 그렇게 보면 번역자가 받는 작업 기간과 대우는 책임과 중요성에 비하여 형편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별개의 주제다) 번역서 제1의 필자는 원저자, 제2의 필자는 번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다, 극단적으로까지 말해 제1의 필자가 번역가라고 해도 완벽하게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긍정적 예는 아니겠지만, 탈무드에 나오듯 원저자라는 팔다리와 심장이 아무리 고생해서 사자의 젖을 구해와도 번역가라는 혀가 '이것은 개의 젖입니다'라고 말하면 만사휴의다. 그래서 번역가는 원저자 못지 않게 책을 고르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렇다면 번역가 소개 중 최소한 관련 주제와 번역서에 연관이 있는 부분은 최대한 살려 줘야 독자가 안심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저자 경력이 일천하고 역자 경력이 길 경우 역자 소개가 더 길어지는 일은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


요컨대, 최소한 해당 서적의 주제와 관련한 사항이라면 독자에게 유용한 판단 기준이 될 번역가의 경력은 실제로 길 뿐 아니라 길게 소개될 수록 좋다. 그것이 원저자 소개보다 길고 짧고는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이렇게 글 하나를 쓰게 된 이유라면.. 드디어 출판된 <The Bitcoin Standard>, 한국어판 제목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에서 내 소개가 저자 소개보다 길어졌기 때문이다. 이제껏 내가 번역한 책 가운데 처음 벌어진 현상이다. 저자의 첫 저서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만, 비트코인이 폭락하든 말든 화폐의 본질을 (그리고 트렌디한 포인트라면 블록체인 고찰도 포함하여) 합당한 관점에서 보게 만드는 좋은 책이다. 12월 1일이 되면 <익명의 독서중독자> 예약구매 버튼을 누를 계획이지만, <익명>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을 짚고 넘어가기 위해 이 글을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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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헌책

독서 2017. 4. 18. 00:22


스트레스가 쌓이면 옷이나 가방 쇼핑으로, 폭식으로 푸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도 다를 바 없다. 내 경우에는 책, 그것도 헌책이다. 3년 전 부산 살 때는 보수동 헌책방 거리가 나름대로 지역 명물이어서 회사를 땡땡이치고 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거리가 애매해서 몇 번 못 갔지만 어쨌든 그런 장소가 근처에 있다는 정도만 해도 마음이 안정되고 타향 생활에 진정제가 되며, 아직도 아무런 연고가 없는 나를 (그것도 첫 애가 백일을 막 넘겼을 무렵) 보냈는지 이해할 수 없는데다 안그래도 심란한 마음을 다독이지는 못할 망정 속을 뒤집어놓던 김모 당시 과장에게 '시발 그럼 내가 때려치고 너 때문이라고 할테니 니가 가'라고 하고 싶던 마음이 사르륵 사라지는 정도였다고 하면 그건 물론 지나치게 나간 것이다. 그 정도 장점은 "'심지어!' 군대에 가서도 얻어올 것이 있다"는 정도 되는, 이삭줍기에 비할 만하다. 어쨌든 보수동은 그 정도 의미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부산에 처음 가 개소식 초청을 위해 시내를 돌아다닐 때 알라딘 헌책방을 발견하고 (지금 생각하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동행하던 금 팀장에게 '여기 들렀다 갈테니 이따 만나자'라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고, 부산에 가기 전 흑석동 시절에 가끔 용산을 갈 때는 헌책방계의 올드스쿨 전형이라 할 뿌리서점을 몇 번 들러 책을 사기도 팔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사는 동네에서 '조금 많이' 걸어가면 유명한 공씨책방, 얼마 전에 무려 할리스를 밀어내고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영업하는 글벗서점, 신촌 거리 한복판에 있는 알라딘 헌책방 신촌점이 있다.


보수동에 아쉽고 공씨책방에 아쉬운 것이라면 규모다. 공씨책방은 여기저기서 언급되는 빈도를 볼 때 오래 영업했다는 상징성은 있겠지만 이를 제외하면 그냥 조그마한 헌책방이다. 보수동에는 책방이 널렸지만, 내가 가본 중 대우서점, 우리글방, 대영서점 정도를 제외하면 다 규모가 고만고만하다. 헌책방에 규모가 왜 중요한가? 물론 찾는 책이 확실해서 주인에게 '이 책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사람에게는 별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상상하기로, 그렇게 물으면 주인은 책을 찾아주거나, 아니면 인근 서점에 연락해서 거래를 중개해줄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딱히 찾는 책 없이 서점에 간다. 그리고 책장의 미로를 몇 번이고 돌며 마음에 드는 제목과 표지를 찾아나선다. 매장 규모가 작으면 일단 들일 수 있는 책 수도 그만큼 한정된다. 공간 제약을 극복하고자 책을 쌓아놓으면, 이제 '헌책방' 하면 연상되는 옛날식 헌책방 그림이 나온다. 즉 쌓여 꺼낼 엄두가 안 나는 책이, 서가에 꽂혀 그나마 꺼내볼 수 있는 책을 가리는 것이다. 그냥 둘러보기도 불편하고 소득도 적으며, 그렇다고 다짜고짜 주인에게 가서 '제가 좋아할 만한 책을 골라주세요!'라고 물을 수도 없다. (게다가 그렇게 물었더니 일면식도 없던 주인이 꺼내온 책 몇 권이 진짜 내 마음에 든다면 이건 또 그 나름대로 으스스하다) 결국 나는 헌책방마저도 어느 정도 규모가 되고, 어느 정도 큐레이션이 된 곳을 선호하게 된다. 마음으로는 동네 상권 침식을 비난하면서도 발길은 결국 대형 할인점을 향하고, 본분 망각을 공격하면서도 알라딘 헌책방에 안 들어갈 수 없다. (물론 알라딘 헌책방에서 헌책계의 진짜 보석을 찾을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만, 그렇다고 그냥 헌책방을 간다고 보석이 내 손에 잡히지는 않더라)


그래서 당분간은 글벗서점과 알라딘 신촌점이 주로 방문할 장소가 될 것이다. 기분이 울적한 요 2주동안 사댄 책이 저 사진에 나온 9권 + 아무리 방문자 없는 이곳이라도 지금은 공개하기 곤란하니 기다려달라고 말해야 할 1권이다.


- 고대중국의 이해, 사마천의 역사인식 : 나는 왜 글벗서점에서 이 두 권을 집었을까?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이건 다 그 전에 번역하던 <Money Changes All> 때문에 <관자>를 회사 도서관에 신청해서 보고 <중국화폐사>를 '전설의 원서 중고책 치고는 싸다'며 충동구매 했던 감정의 흐름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지난 토요일 미용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고대중국의 이해>를 넘기고 있자니, 춘추전국시대 다른 나라에서는 가장 높은 관리가 相이었지만 초나라에서는 시종 令尹이었다는, 현실에 아무 도움 안 되지만 또 중국의 확실한 지방색을 느낄 수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두 권을 과연 1년 내에 읽게 될지는 확실치 않다.


- 어쩌고저쩌고 Civil War : 미국 쪽 책을 번역하다 보면 레퍼런스로 쓸 때가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샀다. 그러고보면 첫 전자책인 <율리시즈 그랜트>(나는 왜 원어 발음을 하나하나 검토했으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제목은 표준표기안을 찾아보지 않은 것인가) 번역할 때 살 걸 그랬다. 그 다음 두 권과 함께 공씨책방에서 샀다.


- 손에 잡히는 아두이노 : 나는 라즈베리파이에 더 관심이 있지만, 그래도 기계 제어에는 아두이노가 낫다는 사실도 경험했다. 물론 지금처럼 시리얼 통신으로 제어하는 이상의 뭔가를 하게 될지는 역시 미지의 영역이나, 이 역시 '언젠가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때 불현듯 찾아본 이 책이 광명을 내려줄지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집었다.


- 세계사를 품은 영어 이야기 : 취미로 번역을 하다보니 영어의 역사에도 관심이 간다. 굉장히 자세한 책이라기보다는 술술 읽히는 책에 가깝다. 그리고 굉장히 자세해서 한 번도 읽기 힘든 책의 효용과, 쉬워서 여러 번 읽히는 책의 효용은 딱 잘라 비교하기 힘들다.


- 백귀야행 베스트 下 : 백귀야행은 한때 내가 재미있게 보던 시리즈다. 부모님 댁에서 살 때 동생이 대여점에서 빌려와서 보기도 했고, 일부는 내가 사서 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흐름을 놓친 후 이제 20권대로 늘어난 이 책을 따라잡기는 버거울 듯하다. 하지만 베스트가 출동하면 어떨까? 알라딘에서 책등만 보고 그대로 집었는데, 아무래도 上도 사야 할 모양이다. 이렇게 충동구매는 후속구매를 부른다.


- 소유하지 않는 사랑 : 공씨책방에서 두 권짜리 릴케 시선을 보고 2권만 집었더니 같이 사야 한다고 하여 내려놓았다. 그런데 그 전까지만 해도 이름이나 알던 릴케가 갑자기 읽고 싶어진 것은 옛날에 본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두이노의 비가' 번역 문제를 다룬 글이 떠올랐기 때문인 듯하다. (확신은 못 하겠다) 그래서 알라딘에 가자마자 릴케를 검색하고 집어들었다. 1년 전쯤 말당 서정주 전집 1권을 읽고 (그 중 특히 초기작에) 오랜만에 시에 감동했는데, 과연 외국 시 번역본은 감흥을 줄까?


- 공산당 선언 : <Money Changes All> 때문에 로욜라도서관에서 번역본 몇 권을 비교해 보고, (1) 중역보다는 직역, (2) 가능한 최신역, (3) 문장력에 큰 차이가 없으면 옮긴이의 관련 경력 (또한 공역보다는 1인역) 등 나의 원칙에 따라 고른 역본은... 이 책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하지만 뭐 읽어볼 만한 책이니까 샀다. 부연하면 이 책을 포함하여 <자본론>, <국부론> 같은 책은 번역하다 보면 레퍼런스로 자주 언급되는데, 책이 두꺼운데다 사 두고도 완독하려면 아마 까라마조프 형제들을 읽은 다음이 되리라는 가능성 높은 예상 때문에 아마 읽기 전에 신판이 나올 듯해서 사기가 꺼려진다. 다만 김수행 교수가 고인이 된 지금, 당분간은 내 원칙에 부합하는 역본이 바뀔 가능성은 낮아 사둬도 되지 않나 하는 유혹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왜 재학중에 김수행 교수 강의를 하나도 듣지 않았던 것인가...


- Outsider : 번역본이 집에 있는데, 한번 원서로 읽어보자 -> 그런데 킨들로는 안 파네? -> 어차피 아마존 직구 할거니까 묶음배송 시켜야징 -> 어 초판 중고도 '그다지' 비싸지는 않잖아? 역시 책은 초판이지 

하는 마음으로 처음으로 아마존에서 헌책을 주문했다... '영국' 초판이 아니라 '미국' 초판이라는 사실은 접어둔 채.. collectible이라던 커버는, '아 이 책방은 이런 커버도 collect하는구나'하는 깨달음을 주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것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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