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한 지 1년을 15일 남겨놓고 출간되었다.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최초로 맡은 책이다. 즉 '공역'->'단독번역'->'샘플 통과에 따른 단독번역'으로 이어지는 출판번역 테크 중 첫 번째인 것이다. 샘플로 따낸 것도, 단독 번역이 아닌데도 기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게 납품하고 1년이 다 되어 갈 때까지 (번역료는 받았지만) 출판이 되지 않아 '번역 퀄리티를 보고 출간 포기설'이 거의 굳어져 가던 어느 날 갑자기 출간이 되어 버린 요즘, 두 가지 의문점이 나타났다.

1. 제목은 왜 저렇게 지었을까? 이 책 원제는 <The Quest for Security>다. '보호를 찾아서' '안전을 찾는 여행' 아니면 친구 말대로 와우 공략집 같은 원제를 살려 '안보 퀘스트'라고 하기에는 어색하겠다. 하지만 원제와 아무 연관 없는 영문 음역을 제목으로 내세운 데는 당혹감이 든다. 내 가설은, 비용은 다 들였으니 출간은 해야겠는데 (역시나) 번역 퀄리티를 보고 스티글리츠가 "원서가 내 책이라는 흔적을 남기면 문제삼겠다"는, <위대한 탈출> 사태의 정반대 쯤 되는 클레임을 걸어 억지로 바꿨다는 것이다.

2. 표지 중앙에 떡하니 박힌 노란 피라미드와 눈은 뭘까? 역시 원서 표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책의 제목은 'Quest for Security' 또는 '더 초이스'지 '프리메이슨'이 아니다.


이런저런 내용을 차치하면, 딱딱하고 좋은 책이다. 이 책을 번역하지 않았다면 내가 언제 무슨 계기로 기후 변화나 글로벌 거버넌스, 도시화의 의의와 영향에 대하여 생각해 봤겠는가? 시장경제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려면 우선 외부성을 시장 안으로 포괄해야 한다. 친환경 공법,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제품이 비싼 것은 싼 제품이 유발하는 공해의 비용이 시장에서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개인이나 기업 수준 뿐 아니라 일개 국가 수준에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시장경제 요소를 지닌 경제는 경쟁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결국 전 세계 국가가 의견을 조율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형태가 중요한데, 모든 나라가 동일한 발언권을 얻기는 힘들고, 또한 G7/G20을 위시한 소수 강국이 주도하는 체제로는 이 외 국가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는 오래 전부터 굉장히 익숙할 이런 주제를 나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깊이 접하게 되었다. 공부하면서 돈도 받는 번역 일을 내가 실질적으로 시작하게 된 뜻깊은 책이다.

Posted by TUNC AU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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