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p.18~
4.
논쟁의 양쪽 진영 가운데 한쪽을 편드는 사람라면 누구든 이 책에서 펴는 전략의 개요를 못마땅해 할 것이다. 종교 지지자라면 자기의 신조를 이토록 세련되지도 포괄적이지도(?) 체계적이지도 않은 방법으로 검토한다는 사실을 일종의 모욕으로 간주할 지도 모른다. 종교란 뷔페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가장 좋아하는 것만 고를 수는 없다고 항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자가 접시에 담긴 음식을 모조리 먹어야 한다고 비합리적으로 고집하다가 몰락한 신앙이 적지 않다. 조토의 프레스코화가 묘사하는 순종을 감상하는 동시에, 수태고지 교리를 건너뛰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불교에서 강조하는 자비를 존중하는 동시에, 불교의 내세 이론을 멀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문학 애호가가 수많은 고전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작가 몇 명을 골라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여러 신앙에서 이런저런 요소를 차용하는 것도 결코 죄가 아니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종교는 세계 21대 종교 가운데서 겨우 세 개 뿐이지만, 그 원인이 편애나 조급증(?) 때문은 아니다. 이 책의 비교 대상이 여러 종교들끼리가 아니라 종교 전반과 세속 영역이다 보니 나타난 결과일 뿐이다.
호전적 무신론자가 이 책을 본다면, 종교가 인간의 갈망을 끊임없이 재는 기준인 양 간주하려는 데 격분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여러 종교가 극단적이고도 제도적인 방식으로 불관용을 실현했다는 사실 뿐 아니라, 예술과 과학도 종교에 못지 않게 풍부한 위안과 통찰을 (그것도 더욱 논리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제공한다는 사실까지 지적하리라. 이렇게도 덧붙여 반문할 지 모른다. 종교의 여러 면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털어놓는 사람들이, 다시 말해 동정수태론에 동의하지도 않고 토끼가 붓다로 환생했다는 본생경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종교라는 주제와 왜 우호적(?) 관계를 맺으려 하는가?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종교는 종교 특유의 순수한 개념적 야심을 지녔기 때문에, 또 세속 제도로 시도한 적이 없던 방식으로 세계를 바꿔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관심을 가질 가치가 확실히 있다고 말이다. 종교는 윤리학과 형이상학 이론을 교육`패션`정치`여행`숙박업`입교의례`출판`미술`건축 분야의 실제 참여를 조합했다. (이러한 관심 범위에만 비교하더라도 세속에서 가장 위대했고 가장 영향력 있던 운동이나 개인의 성취조차 무색해질 것이다) 이처럼 이제껏 지구상에서 목격된 교육적이고 지적인 운동 중에서도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사례를 본다면, 관념의 전파와 영향력에 관심을 둔 사람이 매료되지 않을 리 없다.
5.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몇 가지 특정 종교를 정당화하려 하지 않는다. 종교마다 저마다 옹호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이 책에서는 종교 생활의 여러 측면 중에서도 세속 사회의 여러 문제에 적용하여 효과를 거둘 만한 개념을 검토하려 한다. 그리고 종교 특유의 독단적 측면을 제거함으로써, 가뜩이나 회의적인 현대인이 골치 아픈 이 행성에서 유한한 생애 동안 마주치는 재난과 슬픔에 시의적절하게 위안을 주는 부분을 찾아내려 한다. 그리하여 더 이상 진실해 보이지 않는 모든 것으로부터, 여전히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슬기로운 것을 구해내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