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1. 어떤 종교를 두고 던질 만한 질문 중에 재미도 없고 쓸모도 없기로 제일이라면, 그 종교가 '진실'하냐고 묻는 것이다. 여기서 '진실하냐'는 말은, 그 종교가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왔느냐, 그리고 예언자와 천사가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관장하느냐는 의미다.
이 책의 첫머리에서부터 독자를 잃어버릴 지도 모르지만, 나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련다. "하늘에서 받았느냐는 기준에 댄다면 진실한 종교는 하나도 없다"고. 나는 기적, 영혼, 불타는 덤불 같은 이야기를 도저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리고 몬테풀치아노의 성 아그네스 같이 비범한 사람들의 위업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 (전설에 따르면 성 아그네스는 기도하는 동안 땅에서 반 미터나 떠올랐고 죽은 아이를 되살리기도 했다고 한다. 말년에는 토스카나 남부에서 천사에게 업혀 하늘나라로 올라왔다는 전설도 있다.)
2. 신이 부재함을 증명하는 것은 무신론자에게 일종의 오락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냉정하게 종교를 비판하여 종교인이 아둔함을 가차없고 치밀하게 세상에 드러내는 데서 큰 기쁨을 찾고, 자신의 적이 온전히 바보거나 미쳤다는 사실을 충분히 드러냈다고 느껴서야 공격을 멈춘다.
그런 과제도 나름대로 만족감을 주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쟁점은, 신이 존재하느냐 부재하느냐가 아니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실히 결론지은 사람이 그 결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이 책의 전제는, 무신론을 계속 철저히 지키는 사람도 때로는 종교가 유용하고 흥미로우며 위안을 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종교에 얽힌 관념과 실천 가운데서도 세속으로 끌어올 부분이 있다는 흥미로운 가능성도 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이나 불교의 팔정도 같은 교리에 냉담한 사람이라도, 종교가 복음을 전하고 도덕을 장려하며 공동체 정신을 강화하고 미술과 건축을 발전시키며 여행에 영감을 불어넣고 정신을 단련하며 봄의 아름다움에 감사하게 한다는 사실에 관심을 둘 수 있다. 세상에는 종교와 세속을 가리지 않고 갖가지 근본주의자가 출몰하지만, 종교적 신념에 대한 반대와 종교적 제의 및 개념에 대한 선별적 경의 사이에서 일종의 균형을 잡는 것은 분명히 가능하다.
'종교란 하늘나라가 인간에게 내려준 것'이거나 '완전히 엉터리에 불과한 것'이라는 이분법 사고방식을 버린다면 문제는 더욱 흥미로워진다. 그렇게 된다면 종교가 인간의 발명품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 발명품이 지금도 존재하는 (그리고 세속의 어떤 기술로도 해결할 수 없던) 두 가지 필요를 충족하려고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리라. 두 가지 필요 중 첫째는, 비록 우리 몸 속에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충동이 깊이 뿌리박혀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직업에서 실패하고 인간관계가 꼬이고 가족이 죽고 자신이 늙고 죽는 등 인간의 나약함이 불러일으키는 끔찍한 고통에 대처해야 하는 필요성이다. 정말 신은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던 여러 가지 절박한 이유 때문에 우리에게는 지금도 해결책이 필요하다. 마태복음 제14장에 나오는 빵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 이야기가 과학적으로 진실이 아니라고 누군가가 우리에게 넌지시 알려준다 해도 사라지지 않을 해결책 말이다.
현대 무신론의 오류는 어떤 신앙의 핵심 교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더라도 여전히 타당한 측면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간과한 데 있다. 사람이 종교에 굴복하거나 종교를 모독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면, 종교라는 것이 갖가지 정교한 개념을 담은 저장고라는 사실을 얼마든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개념을 적용함으로써, 세속에서 마주치는 질환 가운데서도 가장 끈질기고 대책도 없는 것 중 몇 가지를 완화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