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만약 미사가 끝난 후에도 그 교훈을 깨달은 존재로 남으려면, 그것은 평소에 매우 익숙하던 자기 중심의 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상태를 유지해야 가능한 일이리라. 그러기 위해서 미사는 현대 세계 특유의 균열을 조금이라도 치유해내는 발상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 발상 가운데 하나를 먼저 들자면, 사람을 특별한 장소에 들여 혜택을 취하자는 것이다. 그 장소는 한 집단이 내세우는 주장에 열광을 일으킬 만큼 매력적이어야 마땅하리라. 또 그 장소에서는 방문객이 평소와 달리 이기주의를 유보하고 집단으로서 즐겁게 몰입할 만큼 영감이 넘쳐야 한다. 현대의 공동체 모임 장소에서는 대체로 실현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외양부터가 공동체로서 참여하는 일이 어리석다고 확증하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미사가 주는 교훈은, 상호작용하고 있는 사람에게 규범을 제시하여 인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있다. 교인에게 정해진 시점마다 고개를 들고 일어서고 무릎을 꿇고 노래하고 기도하고 마시고 먹으라고 지시하는 미사경본의 복잡한 전례를 살피다 보면, 인간은 본래 다른 사람을 대하는 법을 인도받을 때 기뻐하는 본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개인 사이에 그토록 심오하고도 고귀한 유대를 만들어내려면, 한 집단 안에서 아무런 목표도 없이 각자 알아서 어울리게 내버려두기보다는 차라리 안무하듯 치밀하게 계획한 일련의 행동을 따라하도록 시키는 편이 효율적이다.

미사에서 얻는 마지막 교훈은 미사의 역사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좌석에는 교인이 앉아 있고 맞은편 제단에는 성체와 포도주 잔을 든 사제가 서 있도록 절차가 확정되기 이전, 즉 예배로 정착되기 이전에 미사란 다름 아닌 식사였다. 다들 알고 있듯 성찬식이란 원래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교인이 개인사나 가사를 잠시 중단하고, 포도주와 양고기와 무교병을 올려 둔 커다란 식탁에 모여 앉아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일이었다. 이들은 이야기하고, 기도하고, 그리스도와 서로에게 헌신하겠다고 새로 다짐했다. 유대인이 안식일에 식사하며 깨닫듯(?), 기독교인은 먼저 신체의 허기를 충분히 채운 후에야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에 기꺼이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을 잘 이해했다. 이런 모임은 기독교의 미덕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기리는 것으로, 사랑을 뜻하는 그리스어를 따 '아가페 잔치'라고 불리며 예수가 사망한 후 364년 라오디케아 공의회 이전까지 정기적으로 열렸다. 그러다 몇몇 모임이 도를 넘자 불만을 터뜨리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급기야 초기 교회에서 아가페 잔치를 금지하는 한편, "신앙심 깊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기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해야 한다"는 안타까운 결정을 내렸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모여 벌이는 잔치는 오늘날 성찬식으로 알려진 영적 연회로 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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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UNC AU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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