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종교는 인간의 고독을 상당히 잘 안다. 우리가 종교가 말하는 내세나 자기 교리의 초자연적 기원을 딱히 믿지는 않더라도,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는 요소를 이해하는 종교의 방식을 존중하고, 또 평상시에 타인과 연결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편견 한두 가지를 녹여(?) 없애려는 종교의 노력을 존중한다.
물론 가톨릭 미사는 무신론자에게 이상적 환경이 아니다. 의식에 쓰이는 말은 십중팔구 이성에 매우 거슬리거나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워낙 긴 시간이 들어서 미사 중간에 졸고 싶은 유혹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미사의 예식에는 교인들 사이에 애정으로 맺은 유대를 미묘하게나마 강화하는 요소가 가득하다. 따라서 무신론자조차도 미사의 예식을 거리낌없이 공부하기도 하고, 심지어 배운 것을 세속 영역에서 적절히 활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톨릭은 공동체 정신을 만들기 위하여 우선 장소를 이용한다. 지상의 한 구석일 뿐인 이 장소의 주위에 울타리를 두른 후, 이제부터 그 안에서 통용되는 가치는 (예컨대 사무실이나 체육관이나 거실 같은) 바깥 세상에서 통용되는 가치와 완전히 다르다고 선언한다. 건물은 건물마다 특유의 행동 규범을 부과함으로써 방문객에게 기대하는 바를 재설정할 기회를 소유주에게 준다. 예를 들어 미술관에서는 화폭 앞에서 조용히 감상하는 습관이 옳다고 간주되고, 나이트클럽에서는 음악에 맞춰 두 팔을 흔드는 습관이 옳다고 간주된다. 그리고 커다란 목제 출입문에다 입구 주위에 천사상을 300개 조각한 교회에서는, 낯선 사람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네더라도 강도나 광인 아닌가 하는 오해를 살 위험이 없는 보기 드문 기회가 허락된다. 이곳에서만큼은 (시작 예식의 인사 한 구절을 인용하자면)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기 모인 모든 사람에게 약속된다. 교회는 오랜 세월 동안 확고히 세워 온 위신과 학문과 장엄한 건물을 빌려줌으로써, 우리가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자신을 열어 보이고자 하는 수줍은 욕망을 실현하도록 돕는다.
교인의 구성도 의미심장하다. 미사에 참석한 사람의 나이, 인종, 직업, 학력, 수입은 서로 같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무작위로 추출한 집단에 가까울 것이며, 다만 특정한 가치에 헌신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하나가 되었을 뿐이다. 미사는 사람들이 경제력과 지위에 근거하여 만들기 마련인 집단 사이의 벽을 적극적으로 무너뜨리고, 우리를 드넓은 인간성의 바다로 내던진다.
'번역 >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p.37~ (0) | 2021.08.24 |
---|---|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p.34~ (0) | 2021.08.22 |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p.28~ (0) | 2021.08.20 |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p.25~ (0) | 2021.08.18 |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p.23~ (0) | 2021.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