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낯선 사람 만나기
1.
현대 사회로 접어들며 우리가 상실힌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상실하여 가장 뼈아픈 것은 공동체 정신이다.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상상한다. 예전만 해도 '이웃의 정'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가차없는 익명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여기서 말하는 '가차없는 익명성'이란 사람들끼리 접촉할 때 경제적 이익이나 사회적 출세나 낭만적 사랑 등 제한적(?)이고 개인적인 목적을 위하는 상태를 말한다. (원문 확인 필요 - 익명성의 정의인가 성격인가)
공동체에 향수를 품는 배경 가운데 하나를 들자면, 곤경에 빠진 사람을 선뜻 돕기 꺼리게 된 현상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걱정하는 사회적 격리의 증상들, 예컨대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지 못하거나 쇼핑을 마치고 무거운 짐을 들고 돌아오는 나이 지긋한 이웃을 도와주지 못하는 등은 오히려 사소하다.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교육`계층`직업이 형성한 일종의 부족끼리 사는 게토에 갇혀 살고, 그 밖에 사는 사람은 일종의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밖에 사는 사람들도 자신이 편하게 어울리며 공감할 만한 집단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한다. 초면인 사람과 공공장소에서 즉흥적으로 시작하는 대화는 일은 특이하고도 유별난 일일 것이다. 나이가 서른을 넘어가면, 친구를 새로 사귀는 것 조차도 놀라운 일이 된다.
공동체 정신이 훼손된 이유를 찾아내려다 보면 듣게 되는 전통적 설명은 19세기에 유럽과 미국에서 발생한 신앙의 개인화가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신에게 공동으로 예배를 올리지 않게 된 바로 그 시기에, 이웃도 무시하기 시작했다고 역사가는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듣다 보면 문득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그 시기 이전에 종교는 무슨 일을 하여 공동체 정신을 드높였을까? 그리고 이런 현실적 의문도 떠오른다. 공동체 정신이 한때 신학적 상부구조와 밀접히 연관되었다면, 세속 사회는 과연 그런 개념 없이도 공동체 정신을 회복할 수 있었을까? 종교에 근거를 두지 않고도 과연 공동체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을까?
'번역 >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p.28~ (0) | 2021.08.20 |
---|---|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p.25~ (0) | 2021.08.18 |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p.18~ (0) | 2021.08.14 |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p.13~ (0) | 2021.08.13 |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0) | 2021.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