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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인사이트 2015.12월] 경제와 책

TUNC AUTEM 2015. 12. 5. 00:47

출간된 <공유경제는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 소개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코노미인사이트는 한겨레 계열 경제전문 월간지다. 이 잡지의 '경제와 책' 코너에서는 번역가가 자신이 번역한 책 내용을 소개한다. 내게 직접 연락이 온 것은 아니고, 바른번역으로 정남기 편집장이 연락을 해 와서 이지은 팀장님이 내게 전화를 주신 것이다. 경제전문지에서 연락이 왔다고 해서 처음에는 땅에 떨어진 공인회계사의 지위와 자괴감(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에 대하여 취재를 하나 했다.

원고지 13페이지 분량이고, 매당 원고료는 번역 일보다 높다. 하지만 예상했다시피 아무리 읽었던 책 요약이라 해도 내 글을 쓰는 편이 번역보다 힘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요청사항에는 '서평이나 칼럼이 아니니 수락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지만, 내 이름으로 나가는 글에 욕심이 아예 안 날 수는 없다. 번역은 일이 생기면 바로 돌입하는데, 이 일은 구상 명목으로 맡은 지 이틀 만에야 시작해서 (게다가 하루는 밤잠도 설쳤다) 하루 동안 초안을 완성했다.

그리고 힘을 잔뜩 준 초안을 아내에게 주고 출근했다 퇴근한 후 엄청난 혹평을 들었다. 너무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비유도 명확하게 와 닿지 않는 데다 과연 필요한지도 의심스럽다는 얘기도 들었다. 번역 초안을 보여주면 처음에는 "이렇게 번역해도 먹고 살 수 있구나"라고 하던 아내가 시간이 지나면서 "번역한 티가 덜 나고 매끄럽네"라고 할 때는 '너무 기 죽이는 것 같아 이제 의견을 안 내기로 했나보다'고 지레짐작했는데, 이런 혹평을 듣고 나니 '아, 여태까지는 진짜 글이 좋아져서 좋다고 한거구나'라고 생각하고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어쨌든 아내 얘기를 참고하여 비유를 쳐 내고 뜻을 명확히 하려 노력했다. 두 번째 안을 보여주고는 '훨씬 낫다, 최소한 이해는 된다'는 발전인지 뭔지 약간 미심쩍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언론 글쓰기에는 달인일 수 밖에 없는 매일경제 용환진 기자에게 '한번 봐 달라'고 보냈다. 가볍게 읽고 10-20분이면 답장을 주겠거니 했는데 답은 4시간 후에 왔다. 꼼꼼한 첨삭 결과물과 함께. 기사에 thanks to 부분이 있으면 이름을 넣어주겠다는 얘기를 했으나 그런 부분이 없을 거라는 사실은 나도 알고 용환진도 알고 용환진이 안다는 사실도 내가 알고 내가 안다는 사실도 용환진이 아는 사실이다. 나 말고 아무도 안 볼 이 글에다 대신 감사를 표한다. 게다가 용환진 기자는 첨삭의 대가로 내가 밥을 사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밥과 커피를 또 사주는 대인의 풍모를 보였음을 다시 한 번 명시하는 바다.

실제 출간본을 아내와 용환진 기자의 의견을 반영한 안과 비교해 보니 큰 차이가 없다. 몇 군데를 삭제하고 한두 군데 고친 정도다. 다만 한 가지 일만 더 기재한다. 금요일 마감이라 목요일 25시에 발송했는데, 주말까지도 아무 답이 없는거다. 글을 보고 '아, 이건 도저히 안 되겠군'이라고 판단하고 대체 필자를 구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월요일 9시에 바른번역에서 연락이 왔다. "혹시 보내셨나요? 못 받았다고 연락이 왔는데요." 보낸 메일을 그대로 전달했는데 또 아무 연락이 없다. 출간본에 실린 글을 확인할 때까지는 과연 이 글이 실릴까 하는 우려를 했다는 사실을 밝혀 놓는 바다. 게다가 잡지사 홈페이지에는 아직도 11월호 내용만 올라와 있다. 나를 포함하여 보잘 것 없는 (그래서 글이 실릴 거라 확신하지 못하는) 번역가의 심기를 경호해 달라고 이코노미인사이트에게 약하게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