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헌책

21년 헌책 구입 목록 (절판본 한정)

TUNC AUTEM 2021. 12. 4. 01:54

<말하라, 기억이여> 12/1 구입가 20,600원 / 정가 16,000원

나보코프의 유명한 소설 두 편을 대충 읽어보았다. 다른 책보다 문학을 특별히 사랑하지 않는 내가 한 권 내내 특별한 재미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롤리타>의 그 유명한 도입부가 그랬듯,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던 이 책의 본문의 첫 세 줄은 읽은 순간부터 계속 마음에 남았다. 이 정도면 가격도 괜찮지 않나 하여, 다시 한 번 읽어볼 요량으로 샀다.

 

<Constructing "Korean" Origins> 11/14 구입가 37,500원

배형일은 미국에서 활동하다 2018년에 세상을 떠난 역사학자다. '한국사'의 시작은 청동기 유물에 근거하여 '반만년'으로 추정하지만, 문헌으로 따지면 기원전 1세기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가기 어렵다. 누군가는 상상력의 부족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무리할 필요 없는 것을 무리하게까지 상상할 필요도 없다. 문학은 문학이고 역사학은 역사학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가, 찬찬히 읽고 싶어 샀다.

- 사고 나서 발견했는데, 저자의 초판 사인본이다. 사인 내용으로 보면 2000년 말일에 친척 또는 지인에게 선물했던 듯하다. 학문적 견해가 맞지 않았던가(진지) 좁은 집으로 이사했거나 급전이 필요했을 것이다(추정).

 

<제국의 위안부(초판)> 11/7 구입가 40,000원 / 원가 18,000원

약간만 손품을 팔면 개정판에서 복자 처리된 내용을 알 수 있다. 구입은 약간의 수집벽 때문이기도 하고, 한 달에 4만원까지 나오는 알라딘 신한카드 할인 예산을 채우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대영박물관이 만든 이집트 상형문자 읽는 법> 11/7 구입가 23,000원 / 정가 12,000원

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3층은 중국 고대 청동기전을 혼자 보러 간 때 두 번, 그리고 가족과 한 번 방문했다. 첫째가 일기에 상형문자로 자기 이름을 쓰겠다고 하여 위키피디아에서 찾아주었다. 그러고 나니,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역사책 번역 일을 또 받았을 때 이집트어 레퍼런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망상 하나, 유사 주제 책이 절판되었기 때문에 다시 발동한 약간의 수집벽 하나, 그리고 위 <제국의 위안부> 판매자가 다른 헌책방에 비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올려놓았다는 이유 하나로 같이 샀다. 

- 알라딘에서 상형문자 읽는 법을 다룬 성인 대상 교양서는 2005년에 세 권이 한 번에 번역출판되었다가 현재 모두 절판 상태다. 2005년에 뭔가 이집트 붐이 불었던 듯하다.

- 3층에서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도 전시중이다. 이집트 문자 유물은 전혀 읽을 수 없는 (그리고 알고보면 형이상학적으로 시시콜콜한) 반면, 이쪽 유물은 대충 읽는 척이 가능(그리고 읽고 보면 형이하학적으로 시시콜콜)해서 못지 않은 재미가 있다. 도록이 있으면 사려 했는데.

 

<22세기 사어 수집가> 10/1 구입가 9,300원 / 정가 16,000원

동네 도서관에서 서가를 돌아다니다 충동적으로 뽑아 넘겨보았다. 맨 앞 작가의 촌철살인을 보고 빌려왔는데, 다른 작가의 톤과는 또 다르다. 심각하려다 보면 심각해지기만 하는데, 가벼우려다 보면 깊이도 갖출 때가 이런 글에는 있다. 유어마인드에서 나온 책이라 호기심이 더해져 우주점 매물 알림을 걸어두었다가 싼 가격에 샀는데, 이제 남은 매물에는 할증이 붙었다.

 

<가다라의 돼지> 10/1 정가 19,800원 / 정가 19,800원

<인체 모형의 밤> 10/1 구입가 5,300원 /  정가 10,000원

- 모르던 작가의 (긍정적 의미에서) 탈선 인생을 듣고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본 첫 책이 <가다라의 돼지>다. 오컬트와 MythBuster를 같이 좋아하다 보니 저녁에 한 번 잡았다가 바로 완독했다. 결말 부분은 서브컬처 클리셰라 오히려 흥이 식었지만, 읽는 동안에는 분명 즐거웠다.

- <인체 모형의 밤>은 대여책 집중 서가에서 숙성되던 중, 요즘 괴담 좋아하는 첫째가 먼저 꺼내 읽고 '재밌더라'는 감상을 전했다. 생애주기적으로 정당한 검열에 실패한 것 아닌가 하고 경악하며 재빨리 읽었다. 최소한 표현/묘사상으로는 괜찮지 않았나 하고 안도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대충 넘겨보니 셋 중 한 쪽에서는, 그때 내 기준이 좀 관대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뭐 그때 맞는 것만 읽어서야 성장이 있겠는가(자포자기). <22세기 사어 수집가>까지 하루에 구매한 것은, 알라딘 신한카드 할인한도가 다시 생기는 월초에 그 우주점에서 같이 팔았기 때문이다 - 조지 맬러리.

 

<손자병법(올제클래식스판)> 아마도 여름, 구입가 5,000원 / 정가 2,900원

지금은 가지 않는 1층 미용실에서 둘째가 아내의 감독 하에 머리를 깎고 있을 때 첫째에게 아무 책이나 사줄까 하여 내려갔다가 나만 한 권을 골라왔다. 그러나 정식으로 판매되지도 않았던 특별본에, 희귀본이라 정가보다 두 배 가까운 가격인데도 여전히 저렴한 가격인데다, 내가 좋아하는 저자의 번역본이기도 하고, '그 서울시 문화유산'인 공씨책방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구매 정당성을 내세워 본다. 

- 손자병법은 김원중, 유동환 번역본으로 먼저 대충 읽어보았다. 앞서 읽은 두 판본이 원전 해석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 책은 원문과 번역을 토대로'만' 한 기출변형 해설서다. 재미있고 속시원하다. 한편, 앞으로도 계속 손이 가는 것은 함축된 원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해석은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했느냐로 바뀌니까.

- 있었는데 안보이는 정비석 소설 손자병법 4권(고려원판)은 논외로 한다.

 

<현대 미시선(영한대역)> 9/17 구입가 1,800원 / 정가 2,000원

우연히 얻은 현대 영시선 수록 시 중 특히 Marina가 (분량까지) 마음에 들었다. 외국어 시집은 원서도 (어렵고) 번역본도 (원문이 안보이니) 불만이라, 감히 번역의 품질을 논하지 못하는 나는 대역본이 적당하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일종의 시리즈로서, 회사 근처 매장에서 재고를 확인하고 점심에 갔다가, 생각보다도 엄청나게 열악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나혼자) 시리즈를 채운다는 마음으로 샀다. 오랜 기간 한두 쪽씩 떠들어 보다 보면 때에 따라 마음에 또 박히는 시가 있지 않을까.

 

<불멸의 이론> 9/1 구입가 43,500원 / 정가 28,000원

1년 전 대학원 첫 학기에 들었던 소셜네트워크 이론과 응용 과목은 베이즈 확률론과 미분방정식과 선형대수학의 재미를 일깨워 준 것만으로도 큰 이득이 되었다. 저 셋은 학부 때 배웠다는 사실만 기억나거나(선형대수학) 집에 아직 있는 교재를 들춰보니 떡하니 있었다거나(미분방정식 - 정말 부끄럽다) 아마도 배웠을 것이라는 심증이 있는(베이즈) 과목이란 사실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본 이 책의 재미와 정보는 베이즈 확률론 책 가운데서뿐 아니라 과학교양서 전체에서도 최고의 몇 권에 꼽힌다. 내가 읽어 본 극소수 샘플을 기준으로 한다는 사실은 생략하자. 그러나 아무리 몸에 단 책이라도 눈에 쓰면 어찌 읽을 수 있겠는가... 아직 출판되는 원서를 사면 분명 안 읽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고가로 샀다.

- 한 문장을 몇 번이라도 읽어 이해하며 얻는 성취감은 분명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서 하더라도 의무가 있는 '반'취미와, 다른 놀이와 경쟁해야 하는 '온'취미로서의 원서 독서는 분명 성공률이 천지차이다. 파트타임 취미 번역가인 나는 이렇다.

- 지금 보니 최저가가 4만원으로 내려왔다. 배는 아프지만 살 사람은 살아야지.. 아 아니 사야지.

 

<트로이, 잊혀진 신화> 8/10 구입가 12,200원 / 정가 23,000원

바다 민족을 알게 되면서 서서히 지갑을 잠식한 트로이 신화/역사에 대한 관심은 급기야 매장에서 제목과 몇 페이지만 보고 구매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트로이 전쟁(배리 스트라우스)>에 비견할 만한 책인지는, 아직도 안 읽어서 모르겠다.

- 배리 스트라우스의 <스파르타쿠스 전쟁>은 재밌을 거라 생각해서 동네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저자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료/고고학적 증거 부족 문제때문에 예상보다 밋밋해 아쉬웠다. <트로이 전쟁>도 그렇지 않나 하면, 그쪽은 증거만으로도 상상(문학)과 현실(역사)의 괴리가 꽤 커서 '알고 보면 깨는' 맛이 만만치 않다. 브래드 피트의 아킬레우스를 보다가 오스프리에서 나온 청동기 전사의 갑옷을 볼 때의 '깨달음'이랄까.

- 이 주제와 연관된 가운데 제일 처음으로 산 책은 <The End of the Bronze Age>로 아마존에서 주문했었고, 가장 멀리서 산 책은 시카고 헌책방에서 구한 <Before the Greeks>다. 그러고보면 지갑 뿐 아니라 귀한 시간까지 잠식당했던 것. 특히 가족을 동반한 여행에서 헌책방은 가지 말자.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8/8 구입가 57,500원 / 정가 32,000원

<플라밍고의 미소> 8/1 구입가 25,000원 / 정가 28,000원

<여덟 마리 새끼 돼지> 8/1 구입가 30,000원 / 정가 28,000원

<풀하우스>는 재미있게 읽은 책을 하나 대 보라고 할 때를 대비하여 마음에 품고 있는 책이다. 야구와 자기 투병 이야기와 '뭔가' 더 하나까지 세 주제를 한 키워드로 집요하게 묶어냈다고 느꼈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것 같았던 그 '뭔가'가 기억이 안 나서 책을 다시 들춰봐야 했을 정도면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

<브론토사우루스>는 그 시카고 헌책방에서 너덜너덜한 페이퍼백으로 사서 점심시간에 가끔 읽었다. 8월 알라딘 신한카드의 예산을 뭘로 채우지 고민하다 충동구매 리스트에 넣었고, 나머지 두 권은 시리즈 온갖춤의 충동 때문에 샀다. 놀랍게도, 시리즈로 출간된 세 권의 번역가가 모두 다르다. 덕분에 내게 잘 읽히는 권도, 진도가 잘 안 나가는 권도 있다.

 

<5천년 전의 일상> 8/1 구입가 18,000원 / 정가 13,000원

금융의 역사를 번역할 때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참고했던 책이다. 재미만으로도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집트 상형문자 책과 마찬가지로 언젠가 또 레퍼런스가 되어 줄 것이다.(확신)

 

<오늘 밤 모든 바에서>8/1 구입가 4,300원 / 정가 10,000원

나카지마 라모 책 중에서 이 책이 구하기 제일 쉬웠던 듯, 구입일이 제일 빠르다. 내가 가진 다른 두 권과 작가가 같다고는 생각하기 어렵기도(주제), 그럴법하기도(문체) 하다.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3/5 구입가 20,000원 / 정가  22,000원

역시 사는 김에 몰아 사는 같은 저자 책 시리즈. 이리하여 공역을 제외한 저서 모두를 모았다. 도상학 입문서로 <춤추는 죽음>밖에 읽어보지 않았는데, 과연 찾아보면 좋은 책이 많다. 

- <동물, 괴물지, 엠블럼>은 문외한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책인데, 그 난해함 자체가 매력이기도 하다. 거울 딕툼 말고는 머리에 남아 있는 내용도 없지만, 한 권을 통으로 버린다 해도 한 문장을 건진다면 어찌 이익이 아니겠는가!(아님)

 

<수신기(중한대역)> 3/5 구입가 25,000원 / 정가 36,000원

이놈의 원서 대역본 지상주의... 그러나 정가보다 싸게 샀으니 후회는 하지 않는다.

- 2019년에는 요재지이 완역본을 몇 주에 걸쳐 여섯 권 모두 짝 맞춰 샀다. 역시 시리즈 강박관념이다. 아이들을 재우면서 요재지이 한두 편씩을 읽어 줘 봤는데, 나도 모르는 이야기를 읽어나가다가 깜짝 놀라 '앗 다른 이야기를 읽어야겠네' 하고 넘어가거나, (손만 잡고 잤다던지 하는 식으로) 최대한 순화해서 읽어 준 경우가 반도 넘을 것이다. 어쨌든 아이들은 재밌어했다.

- 수신기는 요재지이의 대체본으로 사서 읽어줘 봤는데, 서사보다는 소재에 초점이 맞춰진 탓인지 집중도가 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조금이라도 늦게 자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왜곡된 욕망에 부응하지 못하는 길이가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