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p.37~
미사에서 가난, 슬픔, 실패, 상실 등을 그토록 많이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교회가 생각하기에는 가난한 자, 마음이 약한 자, 절망한 자, 나이 많은 자가 인류의 (그리고 의미심장하게도 우리 자신의) 가급적 부정하고 싶은 측면을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일단 이런 측면을 인정한다는 것은, 서로를 원하는 욕구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이 잘난체하는 순간에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라틴어로 수페르비아superbia라고 가리킨) 오만의 죄에 인격을 장악당하여 주위 존재에 눈을 감아버리게 된다. 만사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고 자랑할 때, 정작 다른 사람에게는 둔감하게 되는 것이다. 우정이란, 두려워하거나 후회하는 일을 두고도 감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자라날 기회를 얻는다. 그 외 다른 이야기는 그저 보여주기에 불과하다. 미사는 오만을 벗어던지라고 권한다. 남에게 폭로당하기 무서운 결함, 놀림당하기 좋은 경솔한 행동, 친구끼리 대화를 피상적이고 무디게 하는 각자의 비밀... 이는 인간이 지닌 조건의 일부에 불과하다. 교회 건물 안에서는 억지로 꾸미거나 거짓말할 이유가 전혀 없다. 고전에 흔히 등장하는 영웅과 닮은 데가 전혀 없는 한 남자이자, 로마의 포악한 병사나 원로원의 금권 정치가와도 닮은 데가 전혀 없는 한 남자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중에서 가장 지고한 존재이며 왕 중 왕이라는 영예를 받아 마땅한 한 남자가 겪은 공포와 나약을 기념하려고 지은 것이 바로 이 건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