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p.28~
물론 고독하게 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계를 만들어 나가려는 희망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 현대 도시라는 쓸쓸한 협곡에서 가장 귀한 감정은 아마 사랑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종교가 말하는 사랑이 아니고, 모든 인류에게 널리 통하는 보편적 형제애도 아니다. 반대로 질투하고 협소하며 궁극적으로는 저열하기까지 한 사랑이다. 낭만적 사랑은 그러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평생 완벽하게 지속되는 친교를 서로 성취할 수 있는, 그리고 다른 사람을 만날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게 될 특별한, 바로 그 한 사람을 미친듯이 찾아 나선다.
현대 사회에서 어떤 공동체로 들어가는 길 한가운데에는 각자 일에서 거둔 성공에 대한 평가(?)가 놓여 있다. 사교장에서 맨 처음으로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 우리는 공동체의 출입문이 코앞에 있음을 직감한다. 이 질문에 내놓는 답이, 저 하찮은 작자들에게 따뜻한 환영을 받느냐, 아니면 완전히 버림받느냐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쟁이 만연한 사이비 공동체에서라면, 각자가 지닌 여러 속성 중에서 낯선 사람의 호의를 구입하는 데 유효한 화폐는 고작 몇 가지 뿐이다. 명함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반대로, 평생 아이를 키워냈거나 시를 썼거나 과수원을 경영해 본 사람이라면, 지배적 다수와 반대 방식으로 살았다고 간주되어 과소평가되더라도 별 도리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정도 차별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상당히 많은 사람이 일에 외곬수로 몰두하는 길을 선택한다는 사실도 놀라울 것 없다. 다른 것은 모두 버리고 일에만 집중하는 전략이야말로 상당히 그럴듯해 보인다. 왜냐하면 요즘 세상에서는 물리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경제적 수단을 확보할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번영하는 데 필수인 타인의 관심을 확보하려면 일터에서 성취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