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p.25~
2.
현대 사회에서 소외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을 더 자세히 검토해 보면, 사람들이 고독을 느끼는 것은 단순히 숫자 문제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수십억 명에 달하는 지금, 낯선 사람에서 말을 걸기는 인구가 더 적었던 예전에 비해 위험하다고 느낀다. 사교성은 인구밀도와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선뜻 말을 거는 것은, 그들을 완전히 외면한다는 선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베두인족은 자기 천막으로부터 100킬로미터가 넘도록 사막만 드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에 낯선 사람을 따뜻하게 환대하는 심리적 여유가 있다. 반면 도시에 사는 동시대인은 마음 속에 선의와 관용을 품고 있다 해도, 몇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먹고 자고 말다툼하고 성행위하는 수백만 명의 존재를 인식했다는 티조차 절대로 내서는 안된다. 그래야만 내면을 조금이라도 더 평온하게 지킬 수 있으니까.
더군다나 자신이 타인에게 드러나는 문제도 있다. 통근열차, 인파로 붐비는 거리, 공항 대합실처럼 다른 사람과 만나는 공공장소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겉모습만 드러내도록 설계된 장소다. 따라서 이런 장소에 있다 보면, 원래 사람이란 하나하나가 복잡하고도 귀중한 개성을 지녔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십상이다. 가령 옥스퍼드스트리트를 걸어 보았거나 오헤어 국제공항에서 환승해 본 후에도 인간 본성을 계속 긍정적으로 볼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한편으로는 예전보다 이웃과 더 많이 연결된 느낌이 든다면, 이는 이웃이 동료이기도 해서다. 집(?)이란, 익명인 채로 늦게 돌아와 일찍 떠나기만 하는 기숙사와 꼭 같지 않다. 시골에서 이웃끼리 친숙한 것은 서로 익숙한 대화 상대라서라기보다는, 건초를 베어들이거나 학교 지붕을 얹는 등 공동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은 내밀하고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서로 튼튼한 연계를 굳히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이런 지역 내 생산과 가내 수공업에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웃끼리 아무런 접촉도 하지 않는 편을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이웃 때문에 지각하거나,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려다 단념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이 서로 왕래하며 지냈던 것은, 상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또 그 대가로 상대에게 도움을 요청받을 일이 생길 수밖에 없어서다. 전근대 사회에서 자선은 말 그대로 필수였다. 예컨대 그때는 초면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에게서 돈을 빌리거나 떠돌이 거지에게 적선하는 순간을 회피하기가 불가능했다. 보건의료체계, 실업보험, 공공주택정책, 소비조합 같은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병들고 허약하고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나 노숙자가 거리에서 도움을 청한다면, 행인은 정부 기관에서 알아서 문제를 처리하겠거니 생각하고 외면하며 지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과 달리 말이다.
순수한 경제적 시각에서 본다면 지금 사람들은 앞선 사람들보다 훨씬 너그럽다고도 할 만하다. 자기 수입의 절반까지도 공동선을 위하여 내놓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조세제도라는 익명의 대리제도를 통해서 돈을 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경우가 있다 한들, 그것은 우리가 낸 세금이 불필요한 정부 기관을 유지하거나 미사일을 사는 데 쓰인다는 사실에 분개해서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민주주의 체제에 속한 사람 가운데 운이 없는 구성원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잘 받지 못한다. 그들이 깨끗한 침대보, 수프, 쉼터, 하루치 인슐린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자기가 낸 세금 덕분인데도 말이다. 시혜자도 수혜자도 "받으세요"(?)라거나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필요를 굳이 느끼지 못한다. 지금 우리의 기부는 복잡다단하게 뒤얽힌 상호의존적 관계에 생명을 주는 일종의 혈액으로 여겨지지도 않고, 수혜자에게 실질적 혜택을 주고 시혜자에게 영적 혜택을 주는 수단으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기독교 시대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사람들이 자기 고치에 갇히게 되면서 다른 사람을 상상하는 주된 수단으로 매스미디어(?)가 점차 각광받게 되었는데, 그 결과 자연스레 낯선 사람을 살인자나 사기꾼이나 유아성애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기존에 속한 가족이나 계층에 존재하는 인맥으로 검증된 소수 개인만 믿어야 한다는 충동이 더욱 강해졌다. 그러다 특정한 상황(예컨대 폭설이나 낙뢰 같은 사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밀폐된 고치 밖으로 나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둘러싸이면 십중팔구 깜짝 놀라게 된다. 알고보니 동료 시민은 자기를 토막 살인하거나 자기 아이를 학대하거나 하는 데 놀랄 만큼 관심이 없는 데다, 심지어 성격도 좋고 적극적으로 자기를 도와주려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