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苦戰

TUNC AUTEM 2015. 11. 23. 23:38

'고전을 읽어야 한다' 좋다.

'고전은 머리가 깨질 정도로 어렵지만 그래도 읽어야 한다. 부자가 될 수단으로써' 여기는 미지일 뿐 아니라 동의하기도 힘든 부분이다. 오히려 첫 번째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내가 뭔가 잘못 알고 동의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하는.

'고전은 머리가 깨질 정도로 어렵지만 그래도 읽어야 한다' 두 번째 문장의 가지를 쳐낸 이 문장에는 사실 제일 동의하기 힘들다.


몇 년 전부터 고전 읽기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유명세를 얻어 간 저술가가 있다. 그 외 이와 독립된 어떤 저작 또는 주장으로 유명해졌는지는 모른다. 다만 나는 번역을 하면서 새삼 내 독서 경력이 일천함을 깨닫고 이를 한 방에 해결할 손쉽고도 간편하며 수고가 들지 않는 방법을 찾다, 고전을 읽으면 파생형인 비고전은 안 읽어도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한 마디로 독서량을 훨씬 줄여줄 수 있는 해결책이 고전 읽기가 아닌가 하는 가설에 이르렀다.

물론 중간 검증 결과는 참혹했다. 내가 평생 읽을 수 있는 (정확히 말하자면 곱씹고 갈무리하는 과정을 다 제외하고 그냥 훑어 읽는) 양이 10 정도라고 치고 전 세계 모든 책이 한 1조 정도라고 치면, 고전도 한 100 정도는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고전 중 1/10을 읽을 수 있다는 얘기도 아니다. 그냥 내 능력을 벗어나는 양이라는 얘기이므로 저 가능해 보이는 수치가 눈에 거슬린다면 로그 스케일로 환산하여 생각해도 좋다)

하여간, 고전을 읽으려면 우선 무엇이 고전인지부터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유명한 고전 목록으로는 시카고 대학 선정 고전선을 빼놓을 수 없겠지만 부업상(직업상이 아니다. 아직은) 원문 의미 못지 않게 한국어 표현이 중요한 내겐 한국에서 책을 낸 출판사까지 표시된 목록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저술가가 쓴 책의 부록에서 도움을 크게 받았다. 목록 자체에 대한 개인적 감상도 물론 있으나 읽지 않은 책이 많아 그건 이후에 쓴다.

하지만 그 책의 본문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매우 명확하기 때문에, 그리고 저자도 딱히 내 동의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쓸 필요도 없다. 오히려 내가 동의하기 힘든 부분은 '고전은 머리가 깨질 정도로, 읽다 비명을 지를 정도로 어렵다. 수없이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난해하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읽으면 머리가 좋아진다'정도로 요약 가능한 내용이다.

나는 내가 읽어 온 책을 모두 100% 이해했을까? 100%라 함은 줄거리인가, 저자가 염두에 두고 쓴 모든 함의인가, 아니면 저자마저 의식하지 못했지만 독자는 매우 명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상징까지인가? 내 생각에 어떤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 약간이라도 변화가 일어났다면 그 책은 읽힌 것이다. 모든 단어와 문장의 함의까지 (그러려면 당연히 그 책에 영향을 끼친 전 세대의 책의 내용과 함의까지, 다시 그 전 세대로...) 읽어내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군주론>은 고전인가? 그렇지 않다고 감히 주장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읽어내야 군주론을 '읽은' 것인가? 모든 주석을 꼼꼼히 읽고 해설서까지 여러 권에다, 군주론에 영향을 주었거나 군주론에서 영향을 받은 책의 계보와 내용까지 꿰어야 군주론을 감히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있다면 좋다. 한 번 스치듯 읽은 사람과 이처럼 책이 닳을 때까지 읽은 사람의 이해 수준은 크게 차이가 날 법 하다. 그리고 일천한 내 경험에 따르면 군주론은 그냥 가볍게 넘겨가며 읽어도 정치라는 주제와 비유라는 기교 면에서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다.

저자가 드는 사례 대부분이 내게는 불편했다. 손자병법을 이해했다고 하려면 <전쟁론>을, <군사학 논고>를, 그 외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병서를 모두 읽고 이해해야 할까? <국가론>을,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었다고 하려면 정말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까지 읽어야 할까? 물론 그럴 수 있다면 좋다. 그러나 위 책들의 저자가 의도한 내용을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게다가 전부 다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나는 손자병법과 국가론과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누군가가 '책에 무슨 내용이 나오던가요' 묻는다면 '직접 읽어보세요'라고밖에 말 못한다. 하지만 생각 외로 딱딱하지 않은 책이라는 정도는 말할 수 있다.

고전은 (번역이 제대로 되어 있다면) 다양한 독자가 자기 수준만큼 얻어갈 수 있는 책이고, 또 자기가 즐길 수 있을 만큼 즐기며 읽어가면 되는 책이다. 읽기도 전에 '엄청나게 어렵지만 반드시 읽어야 한다!'라고 겁부터 먹으면서 읽을 필요가 없단 얘기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윽박지르는 그 저술가의 의도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