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독서중독자들>: 번역가 소개는 저자 소개보다 짧아야 하는가?
내가 보기에 <에이스 하이>가 보여 준 미친 감각을 계승한 작품은 <익명의 독서중독자>다. <빅토리아처럼 감아차라>는 개그만화로서 만족스럽지만, 현학과 개그를 뒤섞었던 두 편과 비교하면 현학이 빠져 있어 계보에서 벗어난 이질적 작품이다.
<에이스 하이>가 그랬듯 <익명> 역시 종결될 때까지 존재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한 번에 몰아보게 되었다. 책을 소재로 했다는 데서 이미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웹툰이었고, 또 만족스러웠다. 후반의 노선 급변은 아마 연재처가 웹툰 수요 대세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고 조기 중단을 요구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글쎄다, 재고부담과 지면 한정, 현금회수가 중요 이슈일 오프라인 인쇄물이 아니라 온라인 포탈이, 인기에 따라 냉정하고 잔혹하게 연재작을 쳐내는 오프라인 만화잡지를 흉내내야 하는 것인가.
(물론 무한정 연재작을 늘리는 것은 개별 웹툰 주목도 하락에 더해 부차적으로는 서버, 트래픽 관리 문제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무작정 롱/팻테일이 아니라 다수 독자를 끌 유명 인기작 + 소수 열광층을 장기로 잡아둘 컬트작 조합으로 큐레이션하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두 작가가 차기작에 착수하려고 의도대로 마무리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다른 문제가 된다.)
매번 다르면서도 (내가 들어도) 합당한 이유로 쫓겨나는 노마드, 필요할 때마다 사대느라 제각각 다른 사자네 책장에 감동하는 회원들의 모습, 까치출판사 표지 디스 등 공감해서 폭소한 포인트도 많이 있다. 또 D. H. 로렌스의 셰익스피어 시 한 구절, 여기저기서 언급된 여러 책 같이 자극을 새로 받을 만한 부분도 있었다.
물론 등장한 책은 결국 작가가 읽었거나 읽고 있거나 읽으면 좋다고 들었을 책일 뿐이다. '명문대 추천도서'에 든 책은 다 명작이고 고전으로 분류될 자격과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부모님께서 통 크게 사주신 그 추천도서 수십 권 중 지금까지도 읽지 않은 책이 절반을 넘는다. 가벼운 책이라면 몰라도 (그 중 대부분일) 무거운 책을 자발적으로 읽으려면 둘 중 하나는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병에 걸려 장기 입원을 하느라 가벼운 책을 모두 읽어버렸거나, 살면서 어떤 계기로 해당 도서의 주제에 관심이 생기거나. 다행히 장기 입원을 하지 않은 나는 콜린 윌슨의 <Outsider>는 영국 인터넷 고서점에서 원서를 사서 읽었지만, 부모님께서 20년 전에 사 주신 케네스 클라크의 <藝術과 文明>은 아직도 펼쳐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 같이 받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몇 년 전부터 읽고 싶어졌지만, 그 동안 활자가 깨끗한 새 번역판이 나와 버린 바람에 가지고 있는 책을 읽느냐, 아니면 과감히 손절하고 새 책을 사느냐를 가지고 몇 년 동안 고민만 하고 있다.
한편, 그나마 돈도 받으니 번역가가 아니라고는 못 할 처지에서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 하나 있다. (사실 이 부분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다.) "'저자 소개'보다 '역자 소개'가 긴 책은 재고의 여지 없이 무시한다"는 '팁'이다. 출판사와 역자의 태도가 그래서야 양서가 나올 리 없다는 이유도 붙여서. 언뜻 들어선 그럴 듯하다. 어쨌든 원서는 원저자가 쓴 것이고, 번역가는 원문을 번역한 것일 뿐이니 번역가가 원저자보다 앞에 나와서는 (내가 해석하기에는) 창조자인 원저자를 무시하고 단순 기술자인 번역가를 그 앞에 두는 건방진 행위라는 얘기니까. 그래서는 번역 과정에서 원문을 무시한 월권이 나오고, 결국 오역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논증 없는 감정적 선동과 선언을 지나치고 생각해 보자.
우선 경력에 따라 소개의 길이가 정해진다고 가정한다면, 원저자 소개가 번역가 소개보다 길기 위해서는 원저자의 경력이 번역가의 경력보다 길어야 한다. 같은 회차의 '안정감 주는 저자 소개' 방식에 따르면 결국 저자의 소개문 길이는 저서와 관련 경력에 따라 결정될 것이고, 역자 소개문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보아 저자는 저술 경험이 많아야 하고, 역자는 그보다 적어야 한다. 반대로, 번역할 가치가 충분하더라도 그 책이 저자의 첫 저서인 한편, 역자는 번역서를 다수 출간하여 (최소한 경력으로만 판단하면) 능숙한 기술자인 번역서라면 '재고의 여지 없이 무시'해야 한다. 바람직한 판단 기준인가?
둘째, 위 경우에서 이어 생각하여, 그렇다면 번역자의 번역 경력은 축소하고, 관련 학력 및 직무 경력도 최소화하여 원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면 어떨까? 내 생각에, 원서가 번역되는 순간 원저자의 기여는 반 이하로 줄어든다. 번역문 독자에게 전달되는 나머지 내용 반 이상은 번역가가, 또 편집자에게 달려 있다. (그래서 번역가와 편집자의 어깨가 무거운 것이고, 그렇게 보면 번역자가 받는 작업 기간과 대우는 책임과 중요성에 비하여 형편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별개의 주제다) 번역서 제1의 필자는 원저자, 제2의 필자는 번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다, 극단적으로까지 말해 제1의 필자가 번역가라고 해도 완벽하게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긍정적 예는 아니겠지만, 탈무드에 나오듯 원저자라는 팔다리와 심장이 아무리 고생해서 사자의 젖을 구해와도 번역가라는 혀가 '이것은 개의 젖입니다'라고 말하면 만사휴의다. 그래서 번역가는 원저자 못지 않게 책을 고르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렇다면 번역가 소개 중 최소한 관련 주제와 번역서에 연관이 있는 부분은 최대한 살려 줘야 독자가 안심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저자 경력이 일천하고 역자 경력이 길 경우 역자 소개가 더 길어지는 일은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
요컨대, 최소한 해당 서적의 주제와 관련한 사항이라면 독자에게 유용한 판단 기준이 될 번역가의 경력은 실제로 길 뿐 아니라 길게 소개될 수록 좋다. 그것이 원저자 소개보다 길고 짧고는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이렇게 글 하나를 쓰게 된 이유라면.. 드디어 출판된 <The Bitcoin Standard>, 한국어판 제목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에서 내 소개가 저자 소개보다 길어졌기 때문이다. 이제껏 내가 번역한 책 가운데 처음 벌어진 현상이다. 저자의 첫 저서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만, 비트코인이 폭락하든 말든 화폐의 본질을 (그리고 트렌디한 포인트라면 블록체인 고찰도 포함하여) 합당한 관점에서 보게 만드는 좋은 책이다. 12월 1일이 되면 <익명의 독서중독자> 예약구매 버튼을 누를 계획이지만, <익명>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을 짚고 넘어가기 위해 이 글을 기록해 둔다.